오피니언 사설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이번엔 꼭 정착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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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중앙선관위 주최의 ‘매니페스토(manifesto) 정책선거 국민대토론회’가 어제 개최됐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후보자들이 유권자에게 예산 출처, 시간계획, 우선순위 등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담은 정책공약을 문서로 검증받자는 게 매니페스토 운동이다. 선거 뒤 그 공약의 이행 여부까지 추적해 다음 선거의 평가자료로도 활용한다. 2006년 지방선거 때 15개 시민단체의 주도로 도입된 이 운동은 신선한 반향(反響)을 불렀다. 후보와 유권자의 쌍방향 소통을 늘려 선거와 정치의 신뢰도를 높이고 절차의 민주주의에 머물러 있는 우리 정치를 내용 면에서 업그레이드시킬 수단으로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4일 토론회에선 매니페스토 운동이 선거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사례와 장애물들이 줄줄이 지적됐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정치권의 늑장 공천이 문제였다. 친이·친박 간의 치열한 공천 내분 속에 한나라당은 공식 후보등록 6일 전인 3월 19일에야 공천을 마무리했다. 민주당은 21일, 자유선진당 역시 20일에야 공천을 끝냈다. 제대로 된 매니페스토가 나오고 충분한 평가가 이뤄질 리 만무였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유문종 사무총장은 “6월 지방선거는 최소한 선거일 60일 전(4월 2일)까지 공천을 완료한 뒤 당과 후보의 매니페스토가 발표돼야 유권자들의 비교·검증이 가능하다”고 호소했다. 배재대 김욱 교수도 “17대 대선 역시 후보 선출이 늦어졌고, 후보들이 네거티브 공세에 치중하며 정책검증이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정당의 공천심사 때부터 매니페스토를 받아내 치열한 정책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나라당 진수희, 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이 자리에서 “공천심사 때 의무적으로 실천계획서를 내도록 하고, 공천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선거를 세 달 앞두고 벌써 2조∼3조원대의 예산이 들어가는 ‘무상급식’ , 도로 확장, 대학·은행 신설 등의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는 상황도 거론됐다. 철저히 ‘헛공약’을 가려내고, 선거 직전의 대형 급조 공약은 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퇴출 운동을 펼친다는 실천본부의 ‘국민행동선언’도 최근 마련됐다.

230개 기초단체장 중 비리, 뇌물수수로 94명(41%)이 기소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중앙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당선 뒤 위법·비리로 물러나 재·보궐 선거를 치를 경우 일정 부분의 국고보조금을 반납하거나, 그 선거구엔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자는 제안도 있었다. 공천책임성의 강화다. 당선만이 목적인 무분별한 후보 단일화 때도 정책 차이를 어떻게 조정했는지 반드시 매니페스토로 공개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모두 귀담아들을 지적이다.

물론 정당과 후보자들이 이 같은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쉽지 않을 터다. 하지만 중앙정치, 계파 줄서기, 지역감정 등에 매몰(埋沒)돼 ‘지방과 정책 없는 지방선거’로는 더 이상 곤란하다. 이를 극복할 매니패스토 운동에 정치권은 적극 호응, 협력하라. 이게 선진정치로 가는 출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