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호 범위 대폭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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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문화재보호법중 법률개정안' 은 크게 두가지 내용을 담았다.

근대기에 지어진 역사적 건축물을 문화재로서 잠정 보호하는 것과 아직 국가와 지방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일반 문화재의 관리를 위해 법적인 토대를 마련한 점이다.

새로 등록될 근대문화유산의 내용과 비지정 문화재의 핵심이 되는 불교 사찰의 일반 문화재 관리 실태 등을 점검해 본다.

*** 근대 건축물

문화재로서의 잠재적 가치가 충분한데도 지어진 시기가 오래되지 않아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근대 문화유산' 에 대해 본격적인 관리작업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는 장차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유산을 미리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되는 것으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 범위를 한층 확대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화재청이 기초조사를 거쳐 '근대 문화 유산' 으로 등록키로한 대상은 총 2백8건이다. 정부는 등록된 문화유산에 대해 수리.관리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며 건축물 개조 때에는 지도.권고를 하게 된다.

등록 대상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건축물들이 수두룩하다.

우선 1938년에 지어진 해방 정국의 현장으로서 김구(金九)선생이 귀국한 뒤 거처로 사용하다가 흉탄에 맞아 서거한 장소인 경교장(京橋莊)과 36년 일제시대 일본인의 위락시설로 건축돼 57년부터 국립극장으로 사용됐던 옛 명동국립극장이 눈에 띈다.

부산의 임시수도기념관(26년 건축)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 또 한국 최초의 근대적 주식회사가 탄생한 경기 부천시 옛 유한양행 소사공장(36년 건축)도 정부 차원의 보호.관리를 받게 된다.

한옥(韓屋)식 개신교 건물로서는 국내 유일의 충남 논산시 북옥 감리교회(55년 건축), 한국전쟁을 전후해 남북의 합작으로 지어져 전쟁전에 북한이 착공했다 중단된 것을 전쟁후 남쪽에서 이어 완성한 강원도 철원의 승일교(48~58년), 소련식 건축물로 해방정국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과 전쟁의 참화를 증언하고 있는 철원 노동당사(46년)도 등록 대상으로 올라 있다.

이밖에 나환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 최초의 특수병원인 전남 소록도 자혜의원(17년), 일제 말기 중국 상하이(上海)에 대한 침략기지로 사용됐던 제주 비행기 격납고(40년), 서울 정동의 영국 공사관(1892년)도 그 대상이다.

문화재청의 관계자는 "근대기에 지어진 역사적 건축물 등은 장차 문화재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한 것들이면서도 그동안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관리를 할 수 없었다" 며 "이같은 취지에서 개정안을 마련해 잠재적인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게 됐다" 고 말했다.

그러나 사유재산에 포함된 문화유산들의 경우 이를 소유한 사람의 반발이 예상된다. 결국 실행 과정에서 문화재 보존과 사유재산권 보호라는 상충되는 문제를 얼마나 조화롭게 풀어갈 수 있느냐가 정부의 남은 과제다.

*** 불교사찰 문화재

우리 문화재의 보고이면서도 그동안 관리 소홀로 도난과 분실에 시달렸던 불교 사찰문화재의 관리도 강화된다.

이번 법개정으로 아직 국가와 시.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일반 문화재(비지정문화재)를 훔친 경우에도 지정문화재와 같은 형사적 처벌(2년이상 유기징역)을 받도록 규정함으로써 보다 많은 문화유산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우리 문화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 문화재는 그 양에 걸맞은 관리를 받아오지 못한 게 사실이다.

조계종 총무원 산하 문화부의 통계에 의하면 1988년부터 99년까지 도난된 사찰문화재는 모두 4백53건.

이 가운데 국가와 지방지정 문화재는 7건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비(非)지정문화재다.

지정된 문화재의 경우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절도범이 이를 시중에 유통시키기 어려워 도난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문제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비지정문화재다.

아직 이같은 비지정 문화재가 얼마나 되는지도 통계가 잡혀있지 않은 상태. 조계종측도 지난해부터야 이들 비지정문화재의 전반적인 조사에 나선 상태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실제 도난.분실되는 문화재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불교 회화, 특히 탱화(幀畵)는 한국적 독창성 때문에 절도범들이 집중적으로 노리는 대상" 이라며 "비지정 문화재의 전수(全數)를 하루빨리 파악해 관리 체계를 만드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조계종측도 각 사찰별로 문화재 파악과 도난 시에 이를 빨리 보고토록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기대에는 아직 못미치는 실정이다. 문화재청도 사찰에 도난방지 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한편 유물전시관을 만들어 사찰 문화재를 한 군데에 모아 관리토록 권고하고 있으나 재원 부족의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문화재청측은 "현재 도난 경보시스템과 문화재 보관용 금고 대여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실정" 이라며 "이번 법개정으로 비지정 문화재 절도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해 그나마 다행"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찰측의 무관심, 정부의 예산 부족, 문화재청의 도난.분실 전담 직원이 두 명에 불과한 점 등 현실적인 장애가 가로 놓여 있어 법개정으로 인한 사찰 비지정문화재 관리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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