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53. 식품설명서 읽는둥마는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몇년 전 교환교수로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슈퍼마켓에서 투명한 유리병에 들어 있는 오이절임을 찬거리로 사왔는데 너무 매워서 못 먹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린 적이 있다. 겉면에 '베리 핫' (대단히 매운 맛)이라고 쓰인 표시사항(라벨)을 잠깐만이라도 읽었던들 그런 실수는 안했을 것이다.

미국의 슈퍼마켓에 가면 주부들이 물건을 고를 때 반드시 라벨을 읽고, 그래도 잘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점원에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보는 장면을 흔히 본다. 점원들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라벨을 거의 읽지 않고 그저 경험과 짐작만으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라벨이나 설명서를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본인이 손해를 보는데도 주의하지 않는다. 간단한 공산품엔 라벨이 붙어 있고 좀 복잡한 상품의 경우엔 반드시 사용방법에 대한 설명서.소책자가 들어있다.

식품의 표시사항도 그냥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식품전문가들이 수십번 또는 수백번의 실험과 연구를 거쳐 가장 좋은 결과들을 정리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중요한 정보다. 라면은 포장지에 표시된 조리법에 따라 제대로 끓였을 때 가장 맛이 좋다. 약은 의사.약사의 지시대로 복용했을 때 약효를 제대로 내게 마련이다.

상품에 표시된 라벨은 도로표지판이나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친절하게 안내해 줄 수 있어야만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 먹을거리는 특히 개인의 입맛은 물론 건강과도 관계가 있으므로 사용설명서를 잘 읽는 게 바람직하다.

식품업자들이 라벨을 제품 포장에 충실히 표시하는 것은 특히 '인스턴트 시대' 에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예외없이 어린이에게 조금이라도 위험한 물건에는 경고문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노완섭<동국대 식품공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