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시영 '신새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 밤중에 깨어 일어나

내가 갑자기 착한 소가 될 때가 있다.

이 때가 가장 정다운 때!

넓은 귀를 늘어뜨리고

내가 더 깊숙한 나로 태어날 때!

우주의 저 까마득한 밑바닥에서

쨍그랑 하고 돌멩이 하나 깨어지는 소리 들린다.

향기로운 땅 새벽이 가차이 열리는 것은 이 때부터

그리운 그리운 파도가 먼 해안선을 초록 띠로 물들이는 것도 이 때부터

- 이시영(1949~) '신새벽'

사람은 시간의 구속을 받는다. 시간이라는 조건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돈을 벌기 위해, 권력을 잡기 위해, 명예를 사기 위해 바치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참다운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바치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모든 사물이 잠든 이른 새벽, 홀로 깨어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라. 문득 착한 소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라. 태초에 하늘과 땅이 갈리던 때의 진실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오세영(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