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글쓰기와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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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자크 데리다가 서 있는 철학의 자리는 전위(前衛)다. 언어와 인간의 유한성을 은폐한 채 신의 자리까지 넘어다보려 한 근대적 의미의 이성 중심주의의 부당함을 폭로하려는 철학적 성찰작업.

즉 니체 이후 현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탈(脫)현대, 해체론의 선봉에 데리다가 있기 때문이다. 그 데리다가 물경 40여년 전에 저술한 초기 논문 모음집 『글쓰기와 차이』는 현대 프랑스 사상의 이정표다.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입장들』등과 함께 그의 주저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이 책은 지명도에서 뒤지지 않는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대목도 있고, 프로이트.레비나스.바타이유 등 그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사상가들에 관한 그의 판단과 글쓰기를 엿볼 수 있기에 읽는 즐거움도 없지 않다.

하지만 데리다는 유명세에 비해 대중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어렵기 때문이다. 독자뿐만 아니라 내게도 곤혹에 가깝다.

그 이유는 아마도 데리다 사상의 체계와 글쓰기에 담긴 방법론 등이 목표로 하는 것은 우리네의 현재 몰골을 드러내주고, '해체' 까지 하려 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해체란 파괴나 부정이 아니라 재구성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탈(脫)형이상학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인 데리다의 해체론은 단순히 형이상학의 용도 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 형이상학의 유일무이하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폭로하고, 여러 개의 형이상학을 생산하려는 것이다. '여러 개의 형이상학' 은 자연스레 '차이' 를 전제로 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차이' 란 표현되고 이해되기를 기다리는 초월적인 것이고, 의미연관이 없음을 말한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에 선행하며, 글쓰기가 담아내야 마땅한 의미 따위는 결국에는 없음을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한다.

텍스트(여기에서는 '책' 이 아니라 '의미가 부여되는 모든 장치 일반' 을 말한다)에 의미를 기록.창조하고, 현실을 구성하는 글쓰기란 따라서 일종의 게임으로 변해 버린다. 이 책, 즉 데리다 자신이 텍스트에 새긴 글쓰기 역시 그를 읽는 각자가 새로운 해체적 상황으로 옮기는 실천 속에서만 의미를 생산할지도 모른다.

여하한의 규칙에도 얽매이지 말고 탈(脫)형이상학적 언어유희를 통해 각자의 개성을 꽃피우라는 것, 이것이 데리다의 메시지라면 메시지다. 읽어내기 쉽지는 않지만, 이미 고전이 된 책을 통해 현대의 사유와 숨쉬고 싶다면 이 책은 도전해볼 만한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이경재 <철학박사.월간 emerge새천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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