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다시 읽기] '놀이하는 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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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화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언어나 사고방식,상징 형식 또는 권력 관계를 통해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요한 하의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문화를 놀이와 관련짓는다(이 기회에 다시 한번 밝혀두자. 하의징아를 여태 ‘호이징가’ 또는 ‘호이징하’로 표기했으나 이것은 잘못되었다.‘하의징아’라고 부르는 것이 네덜란드어에 가장 가깝다.)

문화는 그에 따르면 놀이에서 나왔고 놀이를 통해 지탱된다.법률·철학·예술·학문·정치 이 모든 것이 서로 다투고 경쟁하는 놀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놀이가 문화의 뿌리요 문화를 지탱하는 젖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놀이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행동이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놀이는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자유 자체”이다.

자유가 곧 문화의 원천과 힘이라는 말이다.

둘째, 놀이는 일상적, 본래적 삶과 구별된다. 놀이는 단지 삶을 꾸며 주고 보충해 줄뿐이다.정치적 의도나 경제적 의도를 떠나 그 자체 공동체를 유지하고 꾸며 주는 것이 문화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셋째, 놀이는 일정한 시간,일정한 공간 안에서 일어난다. 여기에는 질서가 있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곧 놀이의 규칙이다.

하의징아가 강조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문화는 자유에 근거하되,한계가 있고,규칙을 따라 놀이할 때 비로소 진정한 문화로서 지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칙을 따라 공정하게 게임을 한다는 게 여기서 중요하다.이것이 곧 패어플레이의 정신이다.그래서 하의징아는 이렇게 말한다.

“놀이의 핵심은 규칙을 따르는 데 있고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곧 패어플레이를 한다는 뜻이다.”패어플레이는 자제력과 극기,상호간의 신뢰를 요구한다.

이것이 없다면 놀이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놀이로서 존재하는 문화도 유지될 수 없다.‘반칙사회’로 규정되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신뢰사회’로 넘어가자면 반드시 경청해야 될 말이다.

『호모 루덴스』는 2차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38년에 출판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출현은 유럽을 전쟁의 위험 속에 몰아가고 있었다.

틀러 치하 독일 청년들의 군사 훈련,군무(群舞),정치 선전,언론이나 지식인들의 경박한 판단,이 모든 것을 하의징아는 문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시기에 자제와 극기,상호 신뢰의 원천으로 도덕적 양심과 이성적 판단,종교적 신앙이 다시 주목받는다.

놀이 바깥 영역에 존재하는 이것들 없이 문화는 유지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하의징아가 이 책에 관심을 둔 것은 놀이 자체보다 ‘도덕적 양심과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놀이로서 유지될 수 있는 진정한 문화’였다.

우리말로는 『호모 루덴스』(김윤수 옮김 ·까치)와 『놀이하는 인간』(권영빈 옮김 ·기린원)로 각각 번역이 되어 있다.모두 영어와 독일어에서 중역된 것이기 때문에 원문과 거리가 먼 곳이 한 두군데 아니다.네덜란드 원문을 통해 하루 속히 다시 번역되어야 할 책이다.

강영안 <교수 서강대 철학과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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