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단독인터뷰] ② "큰 누나는 어릴 때부터 나와 너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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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언론의 인터뷰를 꺼리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 EG 회장이 최근 우연한 자리에서 <월간중앙>과 만났다. 자신과 관련한 이야기에는 언급을 회피하던 박 회장이 “서울 상암동에 건립 추진 중인 ‘박정희기념관’에 대해서는 유족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운에 간 전직 대통령의 외동아들, 오랜 방황으로 휘청거리던 예전의 박지만은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온 듯했다. 2005년 낳은 아들은 올해 다섯 살 개구쟁이가 됐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박 회장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핀다.

“퇴근하고 집에만 들어가면 목을 잡고 목말을 태워달라는 아들녀석 때문에 제가 골치가 다 아픕니다. 명절 차례를 지낼 때 한복을 입고 제 옆에서 절을 하는데 장난기가 많아 넙죽 엎드리는 거예요. 아이고… 그럴 때는 참…. 제가 그녀석을 못 말린다니까요.”

영화광이기도 한 그는 아내와 주말에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일도 한 가지 낙이다. 최근에는 한국전 참전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남편 역을 맡아 열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를 감명 깊게 봤다고 했다. 1990년 EG의 대표이사로 취임했으니 올해로 벌써 20년째다. 1987년 설립된 EG(전신 삼양산업)는 포스코의 냉연강판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독점해 전자용 산화철로 만드는 회사다. 수년간 방황하며 자리를 못 잡을 때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 마련해준 회사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꾸려왔는데 지난해 회사가 조금 힘들어져 애를 먹었습니다. 박태준 회장님이 회사는 잘 되느냐고 물으셔서 지난해 많이 어렵다고 말씀드렸더니 ‘모두 어려울 때 문 안 닫은 것만 해도 잘한 것’이라고 격려해주시더라고요. 저야 고마울 따름이죠.”

“큰누나는 어릴 때부터 나와 너무 달라”

정국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세종시에 대한 누나의 진심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그는 또 한 차례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입가심으로 나온 맥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이윽고 말을 이었다.

“원래 저는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했는데 올 1월1일 누나를 만난 자리에서 ‘설득’당했습니다.(웃음) 제가 볼 때 이명박 대통령과 누나의 생각은 관점이 다릅니다. 이 대통령은 ‘4만 달러 시대로 가야 하니 다른 작은 것(정치적 신뢰, 약속 등)은 보지 말고 일단 빨리 가자’는 것이고, 누나는 ‘4만 달러 시대에 가기는 가야 하지만 좀 돌아보며 지킬 것은 지키며 가자’는 것이죠.

솔직히 아버지도 그러셨지만, 예전에 우리나라가 진짜 힘들 때는 일단 먹고 사는 것이 급했지만, 이제는 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고속성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성장하는 것은 좋지만 약속도 지키고, 신의도 지켜 가면서 질적인 국가 발전을 위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 누나의 의견이죠. 저도 누나의 말을 듣다 보니 수긍이 가더라고요.”

박 회장에게 큰누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어릴 때 둘째누나와 제가 밖에서 놀고 있으면 큰누나는 방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누나는 공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싫증나지도 않느냐’고 물으면 ‘재미있잖아’라고 대답해 할 말이 없게 말들고는 했죠.(웃음) 무슨 일이든 맡겨진 것에는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파예요. 고집도 못 말리고요.”

큰누나와 아버지의 닮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간략한 답변이 돌아왔다.

“애국심이죠. 그 두 양반은 애국심 빼면 설명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둘째누나 박근령 씨의 남편인 신동욱 씨와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나오는 잡음에 대해 묻자 박 회장은 이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애당초 어린이재단사업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맡고 싶지도 않아요. 단, 어머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니 잘 운영되기를 바랄 뿐인데 자꾸 제가 연루돼 무슨 음모를 꾸민다는 말을 그쪽에서 퍼뜨리고 있으니 참….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식사자리는 2시간 동안 이어진 후 끝났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박 회장은 밝고 편안해 보였다.

글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박정희기념관 추진 경과

1997. 12. 5 DJ 구미 생가 방문, 기념관 건립 공약
1999. 7. 19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발족(명예회장 김대중, 회장 신현확)
국고 지원 208억원(운영비 8억원), 모금 500억원
대지 5000평, 건평 2500평으로 사업계획
2000. 7. 19 상암동 부지 선정(3000평)
2000. 12. 11 국고지원 100억원 교부(제한조건 없었음)
2001. 12. 20 국고지원금에 대해 “사업추진이 부진하거나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보조금 지원 결정을 전부 또는 일부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임.
2001. 12. 31 기념사업회와 서울시가 상암동에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건립을 위한 부지 사용 협약’ 체결
기념관은 공공도서관과 전시관 및 부대시설로 구성되며, 완공 후 시설 일체를 서울시에 기부체납하고 기념사업회가 위탁관리하기로 함.
2002. 1. 29 공사 시작
2005. 3. 8 행자부 ‘국고보조금 사용중지처분’ 내림
2005. 5. 31 행정처분취소소송 제기
2008. 1 고등법원 판결, 기념사업회 승소
2009 김정렴 회장 이명박 대통령 방문, 협조요청 및 전경련에 모금(400억원) 요청
2010. 1 기념사업회는 1월 중 설계변경, 2월 중 착공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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