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생과부위자료 청구소송' 작가 고 엄인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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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두 아들을 두고는 어느 곳도 피안(彼岸)일 수 없었다.

지난달 25일 46세를 일기로 별세한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의 작가 엄인희(嚴仁喜)씨. 하지만 그는 남편 이회수(40.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씨와 어린 두 아들 종인(10).종호(7)군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嚴씨는 온갖 부조리한 세상의 속살을 과감하게 드러내 온 작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작가로서 한창 원숙해질 때인 지난해, 덜컥 폐선암에 걸리는 바람에 통렬히 놀려온 붓끝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임파선암에 걸린 어머니 병수발을 들면서 사회비판적 희곡으로 세상의 환부를 노출해 왔지만 정작 자신의 몸안에 암세포가 자라는 줄은 몰랐다.

약 7개월간의 힘겨운 투병생활 끝에 그는 사력을 다해 두 아들과 남편에게 병상메모를 남겼다. 숨지기 일주일전과 하루전 작성된 병상메모에는 조각조각 파편난 상태로나마 가족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담겨있다. 다음은 병상메모의 첫 머리.

"종인아 종호야. 우린 행복해. 서로 듬뿍 사랑하지? 앞으로도 행복해. (암 선고를 받고)골목길 넘어 올 때 왈칵 울었지. 종호 입학식 때까진 살아야 한다구. … 종호는 내 목을 껴안고 이렇게 다짐했어.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절대. (엄마는)내 가슴에 박혔어' . 우린 그냥 일상으로 돌아갔어. 암이란 별게 아닌줄 알았거든.

우린 그냥 마구 사랑했지. 동물들처럼 좋은 세월이었어. (병이)나아가는 줄 알았어. (그러나)말기가 이렇게 무서운 걸까. '별장' 은 놓치기 싫어. 다시 꼭 찾아가서 살고 싶다. 우린 훌륭한 가족이야. 서로 사랑한다는 건 참 흐뭇해" (별장은 뜰이 넓어 토끼와 강아지를 놓아 기르던 경기도 김포군 법원리의 자택이다. )

이어 죽음을 앞둔 심경을 담아 노랫말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뭐가 그렇게 장난스러/산다는 것 자다 깨는 것/산다는 것 자다 잠자는 것/우린 어디로 흘러갈까/그걸 몰라 아무렇지 않아/두려워 말고 사랑하는 눈빛이 빛나면 그게 삶이야 사랑이야. "

숨을 거두기 하루전인 지난달 24일 그는 연하의 남편에게 마지막 어리광을 부렸다.

"…자다가 고통이 심해서 옆에 자는 남편을 두들겼다. (두드리느라 침대의)쇠철봉에 어깨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3백번 쯤 두드렸을까? 간호사가 화가 나서 뛰어왔다. '아저씨! 아줌마가 부르잖아요' . 남편은 (잠에서 깨더니 무의식중에)뛰어나가 연극인인 후배 밝남희(예명)를 데려왔다. 난 남희에게 말했다. '남희야 울고 싶다. 3백번이나 두들겼어' . 그 다음 날 나는(잠귀가 어두운 남편 덕분에)어깨가 멍들어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

그는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누가 내 남편을 비난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죄스런' 내 남편. "

기자가 빈소에서 가족들로부터 이 병상메모를 받았을 때 아직 엄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 둘째 아들 종호는 "여기 재밌는 거 많다" 며 천진하게 자랑했다. 고인은 이 병상메모를 남긴 뒤 다시 의식을 잃었다. 25일 새벽 1시쯤 다시 깨어난 그가 남은 힘을 다해 남편에게 말한 마지막 소원은 "안아달라" 는 것이었다.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둔 그는 짧은 생을 열정적으로 살았다. 서울예전 연극과를 졸업한 뒤 안양 등에서 근로자.빈민.어린이 등을 상대로 연극교실을 열었고, 여성.교육.환경을 비롯해 각종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희곡과 TV드라마.영화.어린이 뮤지컬 대본을 집필했다.

그의 글은 유머가 넘치면서도 부조리한 억압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수를 품고 있었고, 소외된 자들에게는 따뜻한 정을 담았다.

대표작인 '생과부…' 에서 그는 아내의 '성권(性權)' 을 통해 재벌그룹의 횡포를 비판했고, '김사장을 흔들지 말란 말이야' 에선 부도난 중소기업인들을 위로했다. 이외 '비밀을 말해줄까' '작은 할머니' ' 등 30여편의 작품을 냈다. 암에 걸리기 직전에는 '성 셋' 이라는 희곡을 쓰고 있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에로배우.작가.연출가로 활동했던 세 여자가 나이가 든 뒤 노인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벌이는 내용을 다루면서 처절한 밑바닥 인생을 그리고 있었다. '성 셋' 은 유작으로 나올 예정이다.

그의 희곡 '생과부…' 를 영화로 만들었던 배우 명계남(明季男)씨는 빈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희는 연극을 '예술입네' 하면서 고상하게 하려 하지 않고 어린이.노동자.서민들의 삶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문화운동가였습니다. 이 가부장적이고 X같은 세상에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 친구죠. 담배를 네갑 씩 피우며 지저분하게 살고 있는 나는 남고 얘는 갔으니, 참 웃기는 세상입니다. "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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