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교육계 비리,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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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불행히도 지난 세월 우리는 대규모 비리 사건들을 수없이 목도하여 왔기에, 웬만한 뉴스에는 거의 무감각해진 상태다. 그럼에도 지금 폭로되고 있는 비리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재계나 정계가 아닌 교육계의 비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된 일련의 사건들이 침소봉대(針小棒大)되어 교육계 전체가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한 열정과 성실한 자세로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비리가 몇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빚어낸 일과성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점에서 교육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

정계와 재계의 현실적인 지도력은 권력과 부를 바탕으로 한다지만, 교육계의 리더십은 권력도 부도 아닌 존경과 신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교육계 인사들도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그들은 타인에게 귀감을 보임으로써 존경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비리로 인해 그들이 존경과 신뢰를 모두 잃는다면 우리의 교육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교육계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비리가 예방되지는 않는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장학사나 장학관 같은 소위 ‘전문직’에게 부여되는 인사상의 특혜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현재 일부 교사가 장학사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출세’를 보장해 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학사나 장학관도 우리 교육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현장에서 이십 수년 이상 아이들을 기르는 데 헌신한 평교사들을 제치고 초고속 승진을 한다면, 이는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인사 비리의 큰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현재와 같은 교육과학기술부-시·도교육청-구·군교육청 식의 다단계 교육행정체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축소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행정기관들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복잡하고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 이로 인해 교사들의 행정업무량이 크게 늘어남으로써 학생 지도에 투입되어야 할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우리의 구교육청에 해당하는 조직에 불과 3~5명의 직원이 존재하며 사무실 또한 중·고등학교 교장실 근처의 방 하나에 불과하다. 규모나 효율성 면에서 볼 때 우리와 너무 대조적이다.

교육행정조직의 축소가 일자리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인적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학교에 대한 통제나 간섭을 위해 많은 인력을 소모하는 것보다는, 교육 수요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인적 자원을 전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와 아울러 개별 학교의 권한과 자율성을 신장시켜야 한다. 학교의 자율성은 책임의식 즉 책무성과 직결된다. 개별 학교의 예산에서부터 인사는 물론 교육활동까지 광범위한 자율성을 보장해주면서 그 결과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해당 학교에 묻는 체제는 현재 많은 선진국에 보편화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의 경영 및 재정은 투명해질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른 비리의 소지도 자연히 줄어든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노무현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출범 2년이 더 되었건만 개별 학교의 자율성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물론 오래된 관행을 타파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정부의 의지다. 제발 교과부는 과거에 누려온 관치의 기득권을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사심 없이 포기하기 바란다.

한국의 교육을 이정표 삼아 종종 길을 묻는 많은 나라들에 우리의 발자취를 떳떳하게 보여주는 날을 바라며 글을 맺는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