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좌절된 이산가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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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50년을 넘게 기다렸는데 그걸로도 부족하단 말입니까. "

3차 이산가족상봉 방북단에 선정돼 큰아들 이충율(53)씨를 만날 꿈에 부풀었던 이제필(71.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씨는 엄청난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李씨는 당초 방북단에 선정되지 못했으나 방북을 포기한 신청자들이 생겨 지난 22일 명단에 오르는 행운을 잡았다. 하지만 북측이 "아들이 아파 상봉이 어렵다" 는 이유로 방북단에서 제외할 것을 통보해 왔다.

특히 큰아들이 李씨를 삼촌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李씨 부부는 1951년 당시 네살배기였던 충율씨를 부모.형에게 맡겨놓고 두살배기 둘째아들 춘길(51)씨만 데리고 월남했다. 李씨는 쌀가마니를 짊어지고 가기 위해 큰아들을 놔두고 월남한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16년째 중풍을 앓아 왼쪽 몸을 쓸 수 없는 부인 민정렬(73)씨는 상봉 좌절 소식에 충격을 받아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

대신 이들은 25일 남북 서신교환 대상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李씨는 "편지만 교환하면 뭐합니까. 아들을 만나고 나서 죽을 겁니다" 라며 한 맺힌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 북측 조카 정진복(67)씨가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돼 방북단에 포함됐던 김산옥(93.여.강원도 춘천시)씨 역시 막판에 방북이 취소됐다.

당초 만나기를 기대했던 큰아들 정진영(71)씨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金씨는 일곱 자녀 중 함께 월남한 막내아들 진웅(58)씨와 실종됐던 큰아들을 제외한 5명을 모두 전쟁 때 잃었다.

이경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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