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역사를 준비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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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늘을 기점으로 꼭 2년 뒤면 金대통령은 물러난다. 2년 뒤 金대통령은 필연적으로 역사 속의 인물로 바뀐다. 정파.지역.애증에 얽매인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 명암 갈린 美역대대통령

金대통령으로서는 이제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 볼 때가 온 것이다. 만일 지금까지가 만족스럽지 못한 3년이었다면 이제 이를 수정할 수 있는 기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임기간을 어떻게 보냈든간에 임기가 끝나면 모든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 으로 역사에 스며든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역사 속에서 자랑스런 대통령을 갖고 싶어한다.

이제 막 새 정권이 시작된 미국에서는 새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주는 지침서들이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다. 헤리티지 연구소에서는 '성공한 대통령직(職)의 열쇠' 를, 대통령직연구센터에서는 지난 1백년 동안의 역사적 사례를 모아 '새 대통령에게 드리는 보고서' 를 발간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다.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수밖에 없다" 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사(史)에서 추출해 낸 훌륭한 대통령의 조건은 "겸손하라, 야당(국회)과 잘 지내라,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믿음을 얻어라" 로 요약된다.

실패는 교만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이 된 것만으로도 교만해질 만한데 여기에다 성공적인 정책을 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여러 대통령들이 역사적으로 훌륭한 일을 한 뒤 최악의 사태를 맞았던 까닭은 그러한 성공이 가져다 준 교만 때문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역사적 수교를 하고 소련과 전략무기협정을 맺는 등 눈부신 업적을 이룬 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쫓겨났다. 클린턴은 역사상 처음 흑자예산과 최고의 경제번영을 이룬 뒤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투표까지 당했다. 위대한 사회를 내세우며 60년대의 개혁정책을 도입한 존슨 대통령은 미국을 베트남전 수렁으로 끌어넣었다.

金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은 후 새해부터 벌어지고 있는 국내사태를 보면 이렇듯 성공 뒤에 오는 자만의 결과가 아닌지 걱정된다. 로마의 개선장군이 로마로 돌아올 때면 그 시종들이 옆에 붙어서 "당신 역시 죽게 마련이다(You too are mortal)" 를 계속 외치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개선장군일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지혜였다.

최근 미국 역사 중 국회, 특히 야당과 사이가 나빴던 대통령 치고 성공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을 주도하고도 자국에선 의회의 인준을 못 받은 윌슨 대통령, 포괄적 핵금지협정을 주도하고 의회승인에 실패한 클린턴이 그 예이다.

반대로 양원을 다 상대당이 잡고 있는데도 마셜플랜.나토조약 등을 성공시킨 트루먼 대통령은 성공사례이다. 성공한 대통령 레이건 역시 의회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반대당인 민주당 출신의 오닐 하원의장은 레이건에 대해 "처음에는 부족한 듯 하지만 60%만을 가져갔다가 그 뒤 다시 와 나머지를 가져갈 줄 아는 사람" 이라고 평했다.

오닐과 레이건은 "낮에는 호랑이같이 싸우지만 일단 오후 5시가 넘으면 화기애애하게 농담을 하며 지낸다" 고 했다. 의회의 협조를 못 얻는 대통령의 권력은 반쪽이다. 야당을 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 야당과 잘 지내라는 것이다.

***성공한 정책 뒤 신경써야

국민의 신뢰는 대통령 리더십의 핵심이다. 신뢰는 정직에서 나온다. 닉슨의 도청은폐, 클린턴의 거짓말은 그들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누구든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 실수를 감추고 변명만 하느냐, 아니면 용기있게 솔직히 인정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정직하면 당장 역풍을 맞을 것 같지만 국민들은 그것을 통해 대통령에게 신뢰를 갖는다.

레이건은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지만 국민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스스로 파헤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신뢰를 잃는 순간 약체 대통령이 돼 더 이상 일하기가 힘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창극 미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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