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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상 ‘루시’를 찾아서(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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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류 아담과 이브가 처음 살았던 에덴동산은 이스라엘이나 중동 근처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나 탄자니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루시가 인류의 이브라면 아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과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남성 아담은 아프리카 서북부에서 살고 있는 부시먼의 직계 조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고고인류학자, 탐험가인 스펜서 웰스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인류 최초의 남성 아담의 흔적을 추적한 이야기를 엮은 <최초의 남자>가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룬 책이다.

저자 웰스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 이브라면 남편인 아담의 존재는 왜 발견되지 않는지가 궁금했다.

아담과 아기화석도 발견돼

그래서 그는 부계로만 전달되는 성염색체인 Y염색체에 주목해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부시먼 족, 호주의 원주민인 애버리지니 족,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리 족, 러시아 툰드라의 축치 족까지 지구 곳곳의 다양한 종족을 10년간 탐험하면서 Y염색체 DNA를 얻었다.

그는 이를 통해 아담이 아프리카 서북부를 포함하는 광대한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시먼의 직계 조상이며 6만년 전 이후로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와 호주로 이동해갔다는 것을 추적해냈다.

그렇다면 루시의 자식도 있을 것이다. 모든 현생인류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320만년 전의 여성 루시와 같은 아기 화석(little Lucy)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

지난 2000년 에티오피아 북동부 디키아 지역에서 발견돼 ‘셀람’이란 별명을 얻은 이 세 살짜리 여자 아기의 유골은 사암에 파묻혀 있었다.

사암을 한 알갱이씩 긁어내는 5년간의 고된 작업 끝에 비로소 루시와 같은 종의 직립원인이란 사실이 확인됐으며 퇴적물 분석 결과 약 330만년 전쯤 숨진 것으로 보인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연구팀은 거의 완벽한 유골 보존 상태로 미루어 아기가 홍수에 휩쓸려 단시간 내에 퇴적물 속에 파묻히게 된 것으로 추정했다

발견된 유골은 온전한 두개골과 상체 전부, 팔다리 주요 부위 등이며 CT 스캔 촬영에서는 아직 돋지 않은 채 턱에 붙어 있는 치아들이 나타나 세 살 정도의 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침팬지와 인간의 중간

루시에 이어 루시의 아기로 추정되는 화석도 출토됐다.

놀랍게도 이 화석에서는 화석화되기가 매우 어려운 설골(舌骨)까지 발견돼 인두(咽頭)의 구조와 발성 방식까지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연구진은 혀 근육에 붙어 있는 설골이 침팬지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밝혔다.

이는 언어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는 못 되지만 아파렌시스가 어떤 소리를 냈든 “인간 엄마보다는 침팬지엄마의 귀에 더 호소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또 이 화석은 유인원 같은 특징과 사람 같은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인류의 기원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원시 치아와 작은 뇌를 갖고 있었지만 직립해 두발로 걸어 다녔기 때문에 셀람 역시 나무를 타고 오르는 능력을 갖고 있었을지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아파렌시스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팔을 가지고 있는 등 해부학적 측면에서 유인원처럼 나무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으나 이런 신체적 특징이 실제로 사용됐는지, 아니면 진화 과정에서 남게 된 것인지는 아직까지 의문으로 남아 있다.

셀람의 두뇌 용량은 약 330㏄로 같은 나이의 침팬지와 비슷하지만 성인 아파렌시스에 비해 63~88% 정도로 성체 침팬지의 것보다 작다.

침팬지는 3살이면 성체의 90% 정도의 두뇌 용량을 갖게 되는데 셀람의 두뇌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은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년기가 길어지고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은 고도로 발달한 기능을 갖게 되는 인간의 특성이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프레드 스푸어 교수는 “이로써 현생 인류보다는 두발로 걷는 침팬지에 가깝게 보였을 우리의 먼 조상이 어떻게 성장하고 행동했는지 상세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화석의 하체 모습은 인간과 비슷하나 상체는 유인원에 가까웠다면서 ▲어깨 뼈는 현생인류보다는 고릴라에 가깝고 ▲목은 대형 영장류처럼 짧고 굵으며 ▲내이(內耳)의 평형기관은 사람보다는 유인원에 가깝고 ▲손가락은 매우 굽어 있어 기어오르는 능력을 시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셀람의 화석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큰 의문은 아직 사암에서 꺼내지 못한 발 뼈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하는 것이라면서 셀람의 엄지발가락이 사람의 엄지손가락처럼 크다면 침팬지처럼 나무를 기어 오르는 능력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이브로 현생인류의 최초의 어머니라는 루시에게 주어진 영광을 앗아갈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루시보다 무려 100만년이 더 된 아르디(Ardi)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다시 인류 진화의 역사를 다시 써야만 할 지경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이 300∼360만년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일명 루시)보다 약 100만년 정도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440만년 전 인류의 조상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ecus ramidus, 아르디)’ 모습을 공개한 것이다.

“인간진화 역사의 새로운 장 열어”

새로 발견된 화석 아르디는 루시보다 무려 100만년 앞서 존재했던 현생인류의 어머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은 이보다 더 200만년 전에 출현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아르디의 뼈 조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92년의 일이다.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과학자들은 그 동안 발견된 뼈 조각들을 기본으로 재구성한 아르디의 전체적인 모습을 지난 12월 공개한 것. 언론은 “인간진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전했다.

과학자들은 영장류에서 시작한 아르디의 모습과 인간진화 과정을 그림을 통해 자세히 보도하면서 “600~700만년 전 공동의 조상에서 침팬지와 인류가 서로 다르게 진화하기 시작했다”며 “아르디보다 200만년 정도 앞선 인류의 조상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92년 에티오피아 아와시강 지역에서 발굴된 머리뼈와 치아, 아래턱 등의 단편적인 뼛조각을 갖고 그 동안 47명의 과학자가 복원 작업을 벌여온 결과 드러난 아르디의 모습은 이미 침팬지와는 크게 달라 진화 초기 인류 조상의 모습이 현재의 침팬지와 같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했다.

“침팬지도 아니고 인류도 아닌…”

복원된 아르디는 성인 여성으로, 1.2m 정도의 키에 몸무게는 54kg 정도다. 루시 보다는 30cm 가량 키가 크고 몸무게는 배 정도 더 나가는 모습이다.

또 팔은 길고 다리는 짧아 나무를 오르는데 유용한 구조이지만 두발로 직립 보행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손은 멸종된 원숭이와 비슷하지만 강한 엄지와 유연한 손가락은 물건을 세게 쥘 수 있는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아르디의 뇌도 분석했다. 현재의 침팬지와 비슷한 크기다. 치아의 구조는 식물과 견과류는 물론 작은 동물도 먹는 식습성(omnivorous)이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로 과일을 먹는 침팬지와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700만년 전 인류와 침팬지 갈라져”

이 연구를 주도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팀 화이트 교수는 “아르디는 침팬지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그저 아르디다. 다만 모자이크 된 우리(인간)의 과거를 보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기원을 둘러싼 전혀 알지 못하던 시대와 장소의 타임캡슐을 열었다”며 “70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와의 공동의 조상에서 갈라진 이후 초기에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관해 불확실했던 많은 점을 해소해 준 것으로 보인다” 말했다.

한편 아르디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발견된 많은 뼛조각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두개골만 해도 많은 조각을 수많은 컴퓨터 스캔과 1천 시간의 컴퓨터 작업을 통해 디지털로 재구성했고 골반 뼈를 복원하는 데만 6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현생인류의 어머니는 루시에서 다시 아르디로 넘어 갔다. 그리고 다시 이전의 여자 화석이 발견 된다면 이브는 계속 바뀔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 간에 공통된 의견이 있다. 적어도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됐을 거라는 주장이다. 인류의 에덴동산은 이스라엘이나 중동 근처가 아니라 이디오피아와 탄자니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어쨌든 유인원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새로이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디오피아와 탄자니아가 최초 인류의 발생지

세계 최빈국 이디오피아가 요즘 신이 났다. 세계를 돌며 ‘루시의 유산’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인류최초의 발생지인 이디오피아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선전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중동, 지중해를 거쳐 유럽에 이르기까지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발굴된 각종 고대 유물들을 통해 강성했던 이디오피아의 화려한 과거를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다.

“중력(만유인력)은 진리를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진리다. 만약 그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10층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려야 할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진화론도 물리학의 중력이론처럼 부동의 진리다. 인간은 수 백만 년에 걸친 세월 속에서 도전과 응전이라는 풍상을 겪어 오면서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