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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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1. "백지종군 심정으로"

당시 수사기관에서는 “알아서 처리하라”며 범양 리스트를 내게 넘겼다.

리스트엔 한 시중은행장도 올라 있었다. 당사자인 은행장이 나를 찾아와 사표만 내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전임자·임원들과 상의해 후임자를 추천하라고 했다. 괜찮은 사람을 천거했길래 그대로 발령을 내도록 했다.

그는 “후진을 위해 용퇴한다”고 발표했다.행장추천위원회가 생기기 전 일이니까 관(官)의 관여 없이 그만두는 사람이 건의해 행장을 선임한 첫 케이스였다. 불명예스럽게 나갈 뻔한 사람이 미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사표를 내고도 그는 고마워했다.

범양 리스트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우선 큰 돈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확인 결과 일부 배달 사고도 있었다. 리스트에 올라 있던 사람이 거절하자 배달 심부름을 한 사람이 중간에서 챙긴 것이다.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 회장에게 나는 대한선주 인수로 떠안게 될 누적 손실은 부실기업 정리 기준 원칙에 따라 보상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1월께 외환은행으로부터 한진측과의 타결이 불투명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한진측은 부실기업 정리 기준에 따른 일반적인 지원 외에 특별금융 등을 추가로 요구했다.

나는 외환은행장과 은행 실무자들, 조중훈 회장과 회사 실무자들, 재무부와 은행감독원의 실무자들을 내 방으로 불러 두어 차례 마라톤 회의를 했다. 결국 한진측이 한 발 물러서 부실기업 정리 기준에 따른 지원 조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있던 그 해 3월 하순 외환은행측은 느닷없이 한진에서 합의조건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긴급 연락을 해 왔다. 급히 조회장을 전화로 찾았지만 연락이 안 됐다.

청와대 보고 당일 아침 조회장이 직접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백지(白紙)종군하는 심정으로 외환은행이 제시한 조건을 따르겠습니다.”

대한선주 인수를 최종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백지종군이라는 남다른 표현을 썼다.

당초 인수 후보 2순위였던 조양상선은 한진과 외환은행간의 인수 협상 초기에 한진측과 인수 경쟁을 벌였다. 조양측은 대한선주를 인수하기 위해 정치권을 동원하는 등 열심히 뛰었다. 나중엔 조양과 한진이 제시한 조건과 인수 방식이 거의 같아졌다. 결국 채권 확보에 더 유리하다는 이유로 한진이 인수자로 결정됐다.

이에 앞서 86년 1월께 주거래은행을 비롯한 관계기관 협의에선 조양을 경쟁에 참여시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조양을 참여시킨 것은 한진과 경쟁시켜 대한선주 인수조건을 은행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 당기기 위해서였으나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양을 들러리로 세운 것은 아니었다. 한진측이 끝까지 외환은행이 제시한 조건을 수락하지 않으면 조양에 넘길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것이 당시 정부 내의 분위기였다.

한편 대한선주의 윤석민(尹錫民) 회장은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의 실사 결과가 나올 무렵 재무장관실로 나를 찾아와 “대한선주라는 기업체만 유지된다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 후 윤회장이 한진에 대한 지원 조건을 실제보다 부풀려 말하며 “같은 조건으로 내게 맡기면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회사를 부실하게 경영해 엄청난 적자를 냄으로써 은행에 거액의 결손을 떠안기고, 추가적인 담보 능력도 없는 부실기업인에게 무작정 금융 지원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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