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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나는 학생이다'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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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자처하는 시대의 스승

나는 학생이다
원제 我的人生哲學, 왕멍(王蒙) 지음
임국웅 옮김, 424쪽, 9800원

왕멍(王蒙).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을 제쳐 두고 중국이 ‘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내세운 사람.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오르내렸고 이탈리아·일본 등 여러나라에서 대문호로 인정받은 작가. 하지만 우리에겐 낯설기만하다. 소설 『변신인형』(1987) 한 작품이 출간한 지 17년 만인 올해 번역돼 나왔을 뿐이다. 우리가 접하게 될 그의 두번째 작품은? 고희(古稀)가 다 돼 내놓은 그의 인생철학서, 자전 에세이 『나는 학생이다』다.

그의 작품을 읽고 배경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지만 배경을 알고 작품에 관심을 가져야 할 처지다. 하지만 그의 배경 자체가 작품이다. 중국 현대사의 굴곡이 그의 인생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이 책과 중국현대사를 함께 펼쳐가길 바란다. 윈도로 치자면 한쪽 창에는 왕멍의 인생론을, 다른 한쪽 창에는 중국현대사를 함께 띄워 놓는 모습일 것이다.

1945년 11세. 왕멍은 혁명에 뛰어든다. 그리고 14세에 지하당(공산당) 활동을 시작한다. 초의 심지가 다 자라지 않고 살이 붙기도 전에 왕멍은 인생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19세인 53년 첫 장편소설 『청춘만세』를 펴낸다. 그는 인생을 앞서나갔다. 사회보다 더 빨리 성숙했다. 혁명의 시기에 교조주의적 모순을 직시했고 관료화된 혁명세력에 날을 세웠다.

그래서 탄생한 소설이 『조직부에 새로 온 젊은이』(1956). 세상이 변하는 대가로 사람들은 이성을 분실했던 걸까. 그는 우파로 몰리게 되고 63년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유배생활을 떠난다. 79년 복권될 때까지 16년간 그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에게 기다림은 하나의 공간이며 작업대다. ‘활달한 인내’의 시간이다. 정적인 공간이 아니며 끝없이 생산하는 곳이다. “나는 학생이다”라는 고백처럼 그는 그렇게 인생을 배웠고 학식을 쌓아갔다.

그동안 사회는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혁명의 시기는 잠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66년에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중국을 지치게 했다.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잡초론은 타협을 허용치 않았다. 극단적 억눌림 속에서도 변화의 분위기가 자라고 있었다.

76년 마오쩌둥의 사망이 계기가 됐다. 신적인 존재의 죽음과 그가 지목한 후계자의 실정. 그리고 다른 생각을 품은 새로운 리더 덩샤오핑(鄧小平)의 등장. 이제 중국은 혁명의 시대를 벗어나 개혁의 시대로 발을 내딛게 된다. 56년 왕멍이 직시한 문제들을 20여년이 지나서야 사회 전체가 인정하기 시작한 셈이다.

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 전회. 중국의 경제개혁이 시작된 이 때 왕멍도 복권된다. 그 때부터 그는 중앙후보위원, 중앙위원 문화부 장관과 작가협회 서기, 부주석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된다. 왕멍은 공산주의자다. 그는 후쿠야마가 말하는 ‘자본주의식 역사종결’을 비난하고,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상대성과 다양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는 동맹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혈맹은 결국 부패를 만든다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와 조화,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한 인정이 그의 인생론을 관통하는 맥이다.

왕멍은 이 책을 통해 참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세세히 얘기하기도 하고 심오한 철학의 문제를 풀어놓기도 한다. 중국 현대사와 그의 인생, 수십년의 시간이 쌓인 글 하나하나에 묵직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 가지. 대문호가 문학이 아닌 직설적인 말로 인생을 얘기할 때, 우리는 문학에서 가졌던 환상을 조금은 양보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강인식 기자

***왕멍(王蒙)

1934년 베이징 출생. 1986년에서 89년까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조직부에서 새로 온 젊은이』(1956), 『청춘만세』(1957), 『나비』(1980), 『연인의 계절』(1993), 『암살-3322』(1994)등이 있다.

***인간, 생태계의 적

신의 괴물
원제 Man-eater,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푸른숲, 658쪽, 2만8000원

6년 전 생태계 위기를 사회 이슈로 만든 『도도의 노래』의 저자가 이번에는 포식동물의 위기에 초점을 맞췄다.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했다가 인간의 정착촌 등에 밀려 깊은 숲이나 외딴 장소로 밀려난 포식동물들의 아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인간의 탐욕이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포식동물이 사라져 생긴 생태계의 재앙이 자세히 소개된다. 예컨대 1999년 미국의 야생동물관리국은 포식동물의 개체수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코요테 8만5000마리, 여우 6200마리, 늑대 173마리를 죽였다. 그 결과는 곧바로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왔다. 먹이사슬이 끊어지는 바람에 환경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인간이 키우던 가축의 상당수가 나쁜 기후 조건과 질병 등으로 죽었다.

인도 기르 숲에서 간신히 살아가는 아시아 사자, 거듭 수난을 겪고 있는 호주의 소만 악어, 루마니아의 갈색곰, 시베리아의 아무르 호랑이 등이 처한 슬픈 운명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희망은 배우는 것이다

희망의 원리(전5권)
원제 Das Prinzip Hoffnung, 에른스트 블로흐 지음
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각권600여쪽, 각권 1만8000원

독일 출신 철학자 블로흐와 그의 대표작 『희망의 원리』는 1970,80년대 비판적 지식인 사이에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90년대 초에 이 전집을 두 권으로 축약한 번역본이 박설호씨의 번역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그러나 시리즈 내용 전부가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의 주제는 더 나은 삶을 향한 동경을 말하는 ‘희망’이다. 희망을 얘기하려면 우선 현실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잡한 현실적 맥락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야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일상 의식에서 철학적·정치적 유토피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 형식에 스며든 희망을 다룬다.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것이 나치를 피해 10년 동안(1938∼1947) 미국으로 망명한 때였으니 그만큼 희망이 절실해서였을까. 그가 시작한 지점은 잠을 자다 꾸는 꿈이다. 나아가 굶주림과 충동 등 본능에서부터, 동화·연극·영화 등 문화 형식, 의학·기술·건축의 유토피아, 정치적·철학적·종교적 희망에 이르기까지 희망을 문화사적으로 들여다본다.

나치시대는 물론 60년대까지 비판적 유럽 지성과 종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이 책의 메시지는 ‘희망은 배우는 것’이다. 그는 화석화된 유토피아를 거부한다. 오히려 이를 넘어 언제나 적극적으로 사유하기를 권한다. 그래서 『희망의 철학』을 쓴 저명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희망을 ‘메시아적 희망’으로 명명한다.

그에게는 이미 화석화된 공산주의로 표현되고 있던 마르크스주의는 희망이 아니었다. 하나의 절대자를 경배하는 기독교도 희망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메시아 정신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하기를 원한다. 또 마르크스와 포이어바흐에 이어 ‘종교의 종말’을 통해 새로운 메시아적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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