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힘의 외교' 신호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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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과 영국 공군이 지난 16일 밤(현지시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인근 지역에 대해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미.영 전폭기들의 이번 공습을 놓고 부시 미 행정부는 자위적 성격의 통상적 작전 수행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라크 내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하는 미 정찰기들에 대한 이라크군의 공격 횟수가 올들어 크게 늘었고, 이라크군 레이더 시설의 정확도가 향상된 데 따른 자위적 조치였다는 것이다.

미국이 비행금지구역이 아닌 바그다드 인근의 군사시설을 공격한 것은 2년여 만에 처음이다.

더욱이 이번 공격은 부시 정권이 출범한 지 채 한 달도 안된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국방문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습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공격이 '힘의 외교' 를 표방하는 부시 행정부의 사담 후세인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부시 행정부의 의중을 시험해 보려는 후세인에 대해 선제공격을 통해 '본때' 를 보여줌으로써 쐐기를 박는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걸프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후세인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속되는 경제제재 조치로 이라크 국민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주요국간 이견도 심하다. 주변 아랍국들은 물론이고 러시아.프랑스.중국 등 유엔 안보리의 다른 상임이사국들도 이번 공습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분명한 명분과 절박한 이유 없이 자행되는 공격은 그 약효를 떨어뜨릴 수 있다. 무고한 인명피해만 늘리면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힘의 외교' 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번 공습은 이라크뿐 아니라 북한.리비아.이란.시리아 등 이른바 '불량국가' 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경고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힘의 외교' 가 한반도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미국과 대북정책 조율을 앞두고 있는 우리 정부는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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