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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 미술에세이 펼친 '탐미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미술작품에 매혹된 한 딜레탕트의 고백인 『탐미의 시대』는 아슬아슬하다.

미술사.도상학(圖像學) 등에 관한 균형잡힌 지식 없이 미술작품과 작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다는 표현은 따라서 위험한 모험을 바라보는 느낌인데, 흥미롭게도 이 책이 교양적 저술로 큰 손색이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 결과 '인문적 상상력을 동원한 그림읽기' 방식이란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는 확인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은 저자의 전공인 국문학 등 인문학 소양에서 오는 균형감각과 그런대로 글을 매만질 줄 아는 힘 때문일 것이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저자 특유의 미술과 예술품에 대한 고질병 고백은 뿌리가 깊다는 발견이다.

"그림 속엔 허기진 내 청소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 고흐, 뭉크, 모차르트 그리고 시(詩)가 없다면 내 젊음은 망실되었을 것이고, 스스로 정신을 난자했을 것이라고…. '그림에 혼절한다' 는 표현을 겁도 없이 그것도 자주 사용한다. 예술에 대한 갈증과 지독한 탐미적 충동은 아마 생이 다할 때 비로소 멈출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여정은 종착지가 없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미술작품은 클림트의 '다나에' , 모딜리아니의 '자화상' 에서부터 한국의 고금 작가들까지 망라된다.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그리고 현대의 서세옥.이중섭 등 저자가 일찌감치 경복(敬服)했던 작가들이다.

작품을 말하며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는가 하면, 익히 알고 있는 미술사적 정보도 집어넣어 '흥건한 물기의 미술 에세이' 가 내내 펼쳐진다.

탐미주의자답게 여러 작품에 보이는 몽환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자기탐닉 증후군에 집요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대목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서술을 보인다.

물기가 지나치게 흥건하다는 지적은 해야겠다. 감정 과잉과 과도한 수사(修辭), 과장버릇은 때로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다.

이 책에 간결함의 미학인 미니멀리즘 작품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청주교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인 저자의 이번 책은 1999년에 나와 주목을 받은 『시와 그림의 황홀경』에 이어 두번째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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