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에 핀 '조선건축의 자연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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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은 '그윽함' 에서 나온다. 있는 듯 없는 듯, 튀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마치 촌부처럼 소박하기만 한 우리 문화재. 그동안 실물을 직접 보는 것을 제외하곤 사진으로만 대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문화재를 펜화로 소개한다.

전국 각지를 돌며 펜으로 우리 문화재를 그려온 김영택씨의 작품을 통해서다. 세밀한 필치의 펜화와 김씨가 보내온 문화재 단상들을 함께 싣는다.

안동의 하회마을을 찾는 이들 중에 병산서원을 둘러보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 병산서원을 보지 못하면 크게 손해가 되리라는 점은 아셔야 합니다.

많은 건축가들이 하회의 어떤 건물도 병산서원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회마을 입구인 가면미술관 앞 삼거리에서 하회의 반대 방향인 동쪽길을 택하면 효부골에서 장자골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나옵니다.

굽이쳐 흐르는 강을 내려다 보며 고개를 넘어서노라면 강 건너편에 마치 병풍을 친 듯 병산이 시야를 가로 막습니다. 이 병산을 마주보는 나지막한 언덕에 병산서원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그 곳 중심 건물인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아 앞을 내다보면 전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의 만대루가 병산과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넋을 잃게 됩니다.

제 잘났다고 뽐내는 서양식 건축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조선건축의 자연 친화적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병산서원은 풍산 읍내에 있던 풍악서당을 1572년 서애 유성룡이 병산으로 옮겨 지은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입니다.

만대루 넓은 마루에 올라선 뒤에는 천장에 쓰인 보의 모양을 눈여겨 보십시오. 기둥 사이를 연결한 굵은 보들의 모양이 제 각각 입니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재목을 그대로 쓴 모양이 너무 좋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 목수들의 아름다운 심성입니다.

기둥이나 보의 역할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굽어진 나무면 어떻고 뒤틀어진 나무면 어떻습니까. 인위적인 것이 적을수록 사람의 마음은 편해지는 법입니다.

글.그림=김영택 (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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