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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태범·상화 … ‘쾌속세대’ 브랜드로 IOC 표심 잡아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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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22면

‘한국, 아시아 겨울 스포츠의 중심’이라는 슬로건이 걸린 밴쿠버의 한국 홍보관. [밴쿠버=뉴시스]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를 다시 쓴 올림픽이다. 겨울 스포츠에 관한 한 쇼트트랙 빼고는 ‘젬병’이었던 한국이 명실 공히 ‘빙상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밴쿠버 쾌거에 무르익어가는 ‘2018 평창의 꿈’

우리의 ‘피겨 여왕’, 아니 이젠 여왕으론 부족한 ‘여제’ 김연아(20·고려대)는 단연 밴쿠버의 꽃이었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그냥 단순한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이 아니었다. 쇼트프로그램 세계최고기록(78.50점), 프리스케이팅 세계최고기록(150.06점)에 종합 세계최고기록(228.56점)까지. 피겨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무결점 완벽 연기로 이제까지의 모든 상식과 모든 기록을 다 깨뜨려 버렸다.

세계 언론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김연아에게 쏟아 부었다.
‘김연아는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 F장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로 기록될 것’ ‘충격 연기에 전율을 느꼈다’ ‘점프는 풀스피드였지만 착지는 베개에 닿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에지 사용은 너무 완벽해 얼음 표면에 미세한 긁힘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김연아의 무한 지배가 시작됐다’ 등등.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의 아이콘이 됐다. 세계 어느 곳이든 겨울올림픽을 화제로 올릴 때면 김연아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모태범(21)·이상화(21)·이승훈(22) 등 한국체육대 07학번 동기생 삼총사가 이룩한 쾌거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밴쿠버 올림픽이 개막하기 전 한국선수단이 목표로 했던 성적은 ‘금메달 5개 이상으로 종합 10위 이내’였다. 금메달 5개의 내역은 쇼트트랙에서 3개(남자 1000m, 1500m, 5000m계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1개(남자 500m),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1개였다. 그러면서 ‘금메달 수는 예전보다 많지 않지만 쇼트트랙 일색에서 스피드와 피겨까지 메달을 기대하는 종목이 다양해진 것에 의미를 둔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그러나 솔직히 금메달 5개도 많다고 생각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 후보로 꼽은 선수는 최고참 이규혁(32·서울시청)과 2006 토리노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강석(25·의정부시청)이었다. 빙상 월드컵과 스프린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이 근거였다. 그러나 이전에도 최상급 선수가 번갈아 출전하는 월드컵에서 이규혁의 성적은 좋았다. 이규혁과 이강석의 금메달 가능성은 작았다. ‘잘하면 동메달’이었다. 경기 결과 이규혁과 이강석은 동메달도 따지 못했다. 하지만 금메달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왔다. 그것도 1개가 아니라 3개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3개의 금메달 모두 ‘경악’ 그 자체였다.

모태범과 이상화가 남녀 500m를 석권한 것은 한국 스포츠뿐 아니라 세계 빙상계에서도 주목한 사건이다. 전통의 빙상 강국인 러시아·미국·네덜란드도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500m 남녀 동시 석권을 하진 못했다. 그런데 그 대기록을 올림픽에서 한 번도 금메달을 따 보지 못했던 한국 선수들이 세웠다는 사실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남자 500m에서 모태범과 함께 레이스를 펼친 동메달리스트 채드 헤드릭(미국)이 “여기 올 때까지 ‘모태범’이 누군지도 몰랐다”고 했을 정도니까.

이승훈의 남자 1만m 금메달 역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이다.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스피드로 전향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그것도 1만m는 공식적으로 두 차례밖에 뛰어 보지 못했던 선수가 세 번째 출전 만에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빙상 마라톤으로 불리는 1만m에서 동양인이 금메달을 딴 것도 처음이었다.

한국선수단의 대성공을 국민 모두가 기뻐했지만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강원도 평창주민과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사람들이다. 겨울올림픽 유치 삼수째인 평창은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다.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 가능성을 한껏 키웠다는 기대도 있다.

사실 한국이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경기력이다. 겨울 스포츠 경기력에서 한국은 후진국이었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 때까지 한국은 그저 ‘참가에 의의를 두는’ 국가 중 하나였다.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이 된 92년 알베르빌 올림픽 때부터 종합순위에서 10위권을 유지했지만 ‘쇼트트랙 편식’ 덕분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쇼트트랙을 제외하면 빙상이나 스키, 썰매 종목에서 모두 하위권이었다.

겨울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두 차례 모두 경쟁지인 밴쿠버(캐나다)나 소치(러시아)와 비교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경기력이 발목을 잡았다. 더구나 소치가 2014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을 때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수많은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러시아가 한 번도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며 호소한 내용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먹혔다는 분석도 있었다.

유치위원들을 항상 위축하게 했던 바로 그 부분이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거의 해소된 것이다. 쇼트트랙뿐 아니라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서도 세계 정상에 올랐으니 할 말이 생겼다. 물론 여전히 스키와 썰매 종목은 하위권이고 선수 저변이 넓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곤 있지만 그 정도는 이번에 이룩한 업적으로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한국의 대약진은 마침 러시아의 부진과 겹쳐 더욱 도드라진다. 경기력을 앞세워 2014년 겨울올림픽 개최국이 된 러시아는 이번에 강세 종목인 피겨에서도 금메달을 놓치면서 종합 10위를 지키기도 힘든 상황이다.

평창은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놓고 뮌헨(독일)·안시(프랑스)와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6월 IOC에서 정식으로 후보 도시를 발표하지만 구도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판세 분석은 뮌헨의 우세다. 뮌헨은 시설·경기력·관광자원 등 모든 면에서 거의 결점이 없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종합 1위였던 독일은 이번에도 미국·캐나다와 종합 1위를 다투고 있다. 더구나 뮌헨유치위원장 겸 독일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토마스 바하 IOC 부위원장의 파워도 막강하다.

여기서 꼭 한 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올림픽 개최지 결정은 결국 110명 정도인 IOC 위원의 투표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여러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해서 뮌헨을 지지하는 위원들의 마음이 평창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밴쿠버에서의 쾌거가 반가운 이유는 역전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이미 평창유치위 홍보대사다. 지금까진 올림픽에 신경 쓰느라 활동이 미미했지만 이젠 다르다. ‘올림픽 챔피언’으로서, 세계를 놀라게 한 ‘피겨 여제’로서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린다. 유치위로서는 IOC 위원이 모이는 장소에 김연아를 최대한 많이 노출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김연아의 대척점에서 뮌헨을 홍보하는 인물은 카테리나 비트. 84년 사라예보와 88년 캘거리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로 ‘세계의 연인’으로 불렸던 피겨 스타다. 하지만 지금은 단연 ‘김연아 시대’다. 김연아와 비트는 체급이 다르다.

이승훈과 모태범, 이상화도 평창유치위 홍보대사로 뛴다. 김연아에 비하면 파괴력이 약하지만 우리의 취약 지역인 유럽 공략의 선봉에 세울 수 있다. 이번에 한국 선수들에게 강한 인상을 받은 네덜란드·핀란드·노르웨이·러시아 등지에서는 이들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다.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는 내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결정된다. 17개월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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