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사람과 식사할 때 밥값 자기가 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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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34면

Q.윤리경영에 따르는 보상이 무엇입니까? 윤리경영 덕에 신세계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높아졌나요? 윤리경영으로 인한 실적 개선 효과를 계량화할 수 있나요? 윤리강령을 만들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윤리경영을 하면 CEO로서도 좋은 점이 있나요? 한마디로 윤리경영이 정말 남는 장사인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남들은 왜 윤리경영을 안 하나요?

경영 구루와의 대화 구학서의 실전 윤리경영 ②

A.윤리경영을 하면 우선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브랜드 가치가 높아집니다. 경영도 윤리적으로 하겠다는데 나쁘게 볼 사람이 없죠. 윤리경영이야말로 신세계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막상 윤리경영의 효과를 계량화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주가에 기업의 총체적인 가치가 반영된다고 본다면 윤리경영을 도입한 기업의 주가를 윤리경영을 하기 전과 통시적으로 비교하거나, 윤리경영을 하지 않는 회사 주가와 공시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겠죠. 신세계의 경우 윤리경영을 하기 전인 10년 전 주가가 2만~3만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50만원이 넘습니다. 물론 그 상승분 전체를 윤리경영의 효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50% 이상이 윤리경영 덕이라고 저는 봅니다.

구학서 신세계 회장

윤리경영의 가치에 대해서는 긴 안목이 필요합니다. 기업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오랫동안 존속해야 합니다. 즉 계속기업(going concern)이라야 합니다. 투자한 원금만 회수하면 목적이 완성되는 1회적인 사업과 기업이 다른 점이죠. 기업은 운명적으로 장수해야만 합니다. 시쳇말로 지속가능(sustainable)해야 합니다. 그런데 존슨앤드존슨, IBM, GE 같은 세계적인 장수 기업들이 다 윤리경영을 합니다. 그래서 윤리경영은 지속가능한 기업의 필요조건일 것이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윤리경영은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인도의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는 ‘사회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곱 가지 악’(Seven Social Sins)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같은 것들이죠. 모두 정신적 요소들입니다. 저는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존속한 것은 유교 정신이 그 바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악 중 하나가 바로 ‘도덕 없는 상업’입니다. 여기서 상업을 기업으로 치환하면 윤리적이지 않은 기업이 사회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윤리경영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역사가 긴 선진 기업들은 거의 모두 윤리강령을 갖고 있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기준을 정해놓아야 구성원이 윤리적으로 실패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선의를 인정하더라도 사람은 저마다 잣대가 다르게 마련이죠.

무엇보다 윤리경영을 하면 원가경쟁력이 강화돼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수산물 구매 담당자가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당사자야 몇 천만원을 챙기지만 회사는 몇 억원의 손실을 입습니다. 당시 고가로 수산물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갔을 거로 보고 조사를 벌였는데 막상 조사 결과를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경쟁 업체도 다 그 가격에 팔았기 때문입니다. 경쟁사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을 거로 추정해 볼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만일 담당자가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납품원가를 낮춤으로써 그 차액을 고객에게 돌려주거나 이익으로 남길 수 있었겠죠.

신세계는 1999년 윤리강령을 제정하면서 ‘신세계 페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협력업체 사람 등과 식사를 할 때 영업비로 자기 밥값을 내도록 한 것이죠. 유통업이란 업종의 특성상 신세계는 협력업체 직원들과의 접촉이 잦습니다. ‘갑’인 신세계가 접대를 안 받는다고 하니 ‘을’ 입장의 협력업체들이 부담스러워했죠. 이래저래 처음엔 내부의 저항이 심했고, 직원들 사이에서 비용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빚어졌습니다. 이러다 협력업체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경쟁사에 협력업체를 빼앗기고 만다는 그럴듯한 구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화를 바꿔보려고 윤리경영을 하는 거라고 일축했죠.

그런데 막상 시행해 보니 첫 해에 실제로 비용이 줄어들었습니다. 접대비·회의비 등의 명목으로 개인적으로 쓴 비용이 빠졌기 때문이죠. 남은 비용을 직원 수로 나눠 신세계 페이 장려금으로 전 직원에게 똑같이 지급했습니다. 당초 신세계의 기업문화와 접대받는 관행을 바꾸는 게 이 제도의 목적이었지만 ‘아, 신세계 페이가 회사에 이익이 되는 제도구나’ 하고 구성원들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제 협력업체들도 신세계 페이를 안 지키면 피차 불이익이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편해졌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러기까지 몇 년이 걸렸죠.

과거엔 식사 시간이 되면 협력업체 쪽에서 방문하기를 꺼렸는데 요즘은 아무 부담 없이 식사 시간 전에도 미팅을 합니다. 올해는 아예 협력업체들에 캘린더를 배포해 신세계 페이 실적을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이 기록과 대조해 보면 누가 신세계 페이를 얼마나 했는지 확인할 수 있겠죠. 접대를 사회의 관습으로 치부해 버리면 영원히 그 관행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점심 대접받고 차 한 잔 얻어 마시면, 더욱이 공술이라도 마시고 나면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고 나서 등 돌리면 배신으로 생각하는 게 한국적 정서죠. 윤리경영이 뿌리내리려면 각자 제 몫을 내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많은 기업이 윤리경영을 못하고 있는 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윤리경영을 하려면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경영진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상층부가 윤리적으로 흠결이 있으면 구성원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을 때 책임을 제대로 묻기 어려워요. 단적으로 비자금을 만들면 거래처뿐 아니라 해당 기업 내부 실무자에게도 약점을 잡힙니다. 금융실명제 도입 후 비자금 조성 관행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습니다만. 어떻든 이런 약점이 있으면 아래에 윤리경영을 하라고 요구할 수가 없어요. 위에서 요구를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납득을 못하죠. 그런데 상층부가 깨끗해지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걸립니다.

윤리경영을 하면 CEO가 좋은 점이요? 우선 일하기 편합니다. 마음도 편안해지죠. 제가 몸담고 있는 유통업계의 경우 수많은 제조업체와 거래를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연·지연 등 연고 관계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죠. 윤리경영을 제도화하고 난 후로는 인사 청탁 등을 들어주려야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청탁을 거절할 수 있죠. 청탁을 안 들어준다고 한번 소문나면 아예 청탁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 저희 어머니도 저한테는 부탁을 안 합니다. 아들이 절대 안 듣는 걸 아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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