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재미교포 정범진 부장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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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신마비의 중증 장애를 딛고 뉴욕 브루클린 지방검찰청 최연소 부장검사가 된 재미교포 정범진(33.미국명 알레스 정)검사의 인간승리가 미국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조지 워싱턴대 법대에 재학 중이던 1991년 차량 전복사고를 당해 물도 혼자서 마실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된 그는 지난해 45명의 동기들을 제치고 최연소 부장검사가 됐다.

미국 공영방송인 PBS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지난 7일 오후 브루클린의 PBS 스튜디오를 방문한 정검사를 만났다.

- 검사 임무를 수행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글 쓰는 것을 비롯, 모든 게 남들보다 두 배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비서를 고용했기 때문에 출퇴근.용변.식사 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남들이 오해할 때는 견디기 힘들다. 법정에서 만난 한 판사는 '판사가 재판장에 들어오면 전원 기립해야 한다는 기본 예의도 배우지 않았느냐' 고 다그친 적도 있다. 경찰서에서는 계단 때문에 2층에 오를 수 없어 담당형사를 나오라고 했다가 '검사면 다냐. 너무 뻐긴다' 는 말도 들었다. "

- 정상인에서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됐는데 어느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나.

"사랑하던 여자가 떠나고 재활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퀸스의 한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문득 무덤 속의 비좁은 관에서 답답하게 사느니 힘들지만 열심히 도전하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

- 검사를 택한 이유는.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싶었다. 피해자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검사를 택했다. "

- 정상인 동기들을 제치고 승진할 정도로 성공한 비결이 뭔가.

"기적을 바라지 않고 생존의 방법을 빨리 터득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되면 처음엔 현실을 부인하다가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그러다 결국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나는 1, 2단계를 뛰어넘고 현실에 쉽게 적응했다. 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미국사회의 배려가 없었다면 법조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

- 장애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사회가 배려해주는 것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 말라는 것이다.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그걸 몸소 실천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하지만 정상인들도 적극 도와야 한다. 장애인들 스스로에게만 발버둥치라고 요구하지 말길 바란다. 한국의 경우 장애의 극복을 장애인 자신에게만 맡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

뉴욕=신중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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