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좋다] 김기옥 대구시 행정부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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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해 7월,갑작스런 계기로 대구시 근무를 자청해 내려오게 됐다.

본디 김천 촌사람이지만 총무처·행자부 등 중앙부처에서만 공직생활을 해 온 탓에 30여년만의 고향쪽 걸음이 된 셈이다.

스스로 서울내기가 다 된 것처럼 살아가는 중에도 가슴깊은 곳에는 질그릇처럼 투박한 고향이 늘 살아 있어서일까.

발령이 나자 지방 공직생활이 실현된 데 대해 내심 들떠 있었다. 바삐 쏘다닌 기억이 전부인데 벌써 해가 바뀌었다.

지방행정은 초년생인 나에게 있어 낯설고 힘겨운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우선 인력과 재정,제도 등 행정환경이 중앙에 비해 턱없이 열악해 지방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기가 매우 힘든 구조적인 문제를 새삼 실감했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로 대변되는 중앙·서울 집중의 폐해는 그 오랜 역사성 때문에 하루 아침에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과 지방간의 심각한 불균형 발전은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느낌이다.

다른 곳도 비슷하겠지만 대구시청 광장은 거의 매일 크고 작은 민원을 토로하는 시위의 장이 돼 있다.

부도기업 근로자들의 생존대책,폐기물 매립장 반대,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등 시민들의 온갖 욕구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중앙부처 근무 때는 쉽게 겪을 수 없는 생생한 풍경이다. 대다수가 보편적 삶의 보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때문에 지방정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시위대가 흔들어대는 깃발과 노동가·계란세례,풍물패의 짜증스런 소음 속에서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다.

그러나 이 같은 욕구분출의 장들을 전전하면서 나는 어느덧 지방행정만이 갖는 현장성과 역동성에 깊이 매료돼 가고 있음을 느낀다.

평범한 시민의 상가(喪家)에서 소주잔을 나누거나 새벽시장을 찾아 그들의 삶과 직접 부대끼며 봉사하는 보람을 맛 보게 된 것이다.

지방근무 자청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음을 느끼며 나처럼 지방에 고향을 둔 뜨내기 서울내기들이 고향을 생각하며 조금씩 생각을 바꿔 나가면 균형된 나라발전도 앞당겨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金基玉 대구시행정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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