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와이드] 용원포구 전통경매 진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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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비릿한 생선 냄새, 걸쭉한 입담, 넘치는 인정. 봄을 기다리는 겨울 포구. 그곳엔 늘 사람이 북적대고 싱싱한 먹거리가 넘친다.

바닷가 낭만과 어민들의 애환이 깃든 전북 부안군 곰소포구와 경남 진해시 용원포구를 둘러봤다.

"허이야~어히, 3만5천원이 나왔습니다."

8일 오후 1시 경남 진해시 용원동 의창수협 공판장. 녹산 앞바다에서 갓 채취한 물김의 경매가 시작되자 경매사의 예령(豫令)이 울리고 이에 따라 10여명의 중도매인들이 손가락을 폈다 쥐었다 했다.

동료 중매인이 보지못하게 흥정하는 손을 웃옷 속에 살짝 감추거나 모자로 가리는데도 경매사 손성범(孫成範.의창수협 유통사업계장)씨는 제일 높은 가격을 한눈에 알아봤다.

이날 용원 공판장에서 경매된 물김은 40㎏광주리 7백여개. 광주리당 적게는 2만8천원, 많게는 4만5천원에 경락됐다.

김 70여 상자를 상장한 정휘순(鄭輝順.41.부산시 강서구 녹산동)씨는 "올해 김농사를 망쳤는데다 값도 제대로 나가지 않아 죽을 맛" 이라고 투덜댔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채취하기 시작한 김밭에 새끼 고등어떼가 몰려와 양식김을 마구 먹어 치워 작황이 나쁘다" 며 "김농사 20년에 고등어가 김을 먹는 걸 처음 보았다" 며 어이없어 했다.

이날 마른김을 만들기 위해 물김을 사러나온 송계명(宋桂明.61.부산시 강서구 녹산동)씨는 "전남 완도김도 흉작으로 물김 생산이 줄었는데 김값은 오르지 않는다" 며 "지난해의 마른김 재고가 많기 때문" 이라며 한숨지었다.

宋씨는 "김은 낙동김이 최고지요" 라며 "향이 진하고 색깔도 검으면서 윤기가 흘러 일본인들이 최고로 친다" 며 자랑했다.

용원은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낙동김이 가장 많이 위판되는 곳. 매일 오후 1시 경매에 맞추기 위해 오전부터 녹산 앞바다 김양식장에서 김을 실은 모터보트(일명 선외기)가 쉴새없이 오간다.

경매가 끝나면 마른김을 만드는 업자들이 중도매인들에게 물김을 사들여 공장으로 가져간다. 위판물량의 절반 정도는 완도로 팔려간다.

수협공판장에서는 이날 오전 3시와 8시 두차례 물고기 경매가 진행됐다. 가덕도와 거제 앞바다에서 밤새 잡은 고기를 이곳에서 파는 어민은 30여명. 요즘 술꾼들의 속풀이용으로 인기가 높은 물메기가 많이 잡힌다.

또 초봄 가덕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숭어도 이날 1천여마리가 경매됐다.

선착장 입구 좌판에서 물고기를 파는 김선이(65)할머니는 배에서 내린 낚시꾼을 불러세워 "속 푸는 데는 물메기가 최고 아이가" 라며 "5마리에 1만원만 내라" 고 했다.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과 인접한 용원포구는 추위에도 활기가 넘친다.

새벽에는 인근 횟집에서 자연산 횟감을 사려고 몰리고 낮에는 가덕도와 거제도 사이 나무섬.대죽도.종죽도.연도 등으로 낚시 가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용원 선착장과 가덕도를 오가는 도선(渡船)도 거의 만원이다.

경남 진해시 끝머리에 붙어 한적하던 용원포구는 녹산공단이 조성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때 공단 공사장 인부들의 식사 장소로 각광받았으며 봄이면 진해 벚꽃 구경가는 부산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 됐다.

30여곳의 횟집마다 싱싱한 횟감이 수족관을 채우고 있다. 봄에는 숭어, 여름에는 보리새우(속칭 오도리),가을에는 전어 집산지로 유명하다.

30년째 횟집을 하는 안달원(安達原.65)씨는 "이곳 고기는 육질이 단단해 맛이 일품" 이라며 "부산신항이 들어서면 용원은 또한번 변하겠지요" 라고 말했다.

진해=강진권 기자.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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