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헌재 결정 이후…' 전문가 3인 좌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직후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마련된 전문가 좌담회에서 장훈(左).이광윤(中).황희연 교수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몰고 올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결정의 법적 의미와 앞으로 국토 균형발전 정책이나 정국에 미칠 영향 등을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진단해 봤다.

<좌담회 참석자>

▶ 이광윤
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

▶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황희연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

▶ 사회=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사회=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다들 놀라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헌재 결정을 전문가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지.

이광윤 교수=한마디로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떤 일이든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황희연 교수=이번 결정에서 한 분이 반대 의견을 낸 것에 주목하게 된다. 이를 볼 때 헌재 재판관의 개인 성향에 따라 크게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사회=어떤 의미에서 보수적이라고 보는지.

황 교수=변화를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진보적이라고 하고, 변화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보수적이라고 볼 때 보수적 결정이라는 의미다.

장훈 교수=일반 국민은 충격적으로 받아들겠지만, 정치학자의 입장에서 이번 일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충격적인 일이 아니라 앞으로 민주주의를 꾸려가면서 일상적으로 부닥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즉 국회에서 여야와 대통령이 정책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할 때 사법부가 개입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교수=헌재 결정 내용은 수도 이전이 헌법 개정 사안이라는 의미다. 특별법의 명칭은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으로 돼 있는데 실제 내용은 수도 이전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 따라서 헌재도 신행정수도 건설은 수도 이전이라고 서두에 밝혔다.

사회=대통령의 공약사항인데 이번 결정으로 대통령의 통치나 결정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향후 정치권을 포함해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

장 교수=우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우선 여야 정당들이, 즉 기존의 여의도 정치권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정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당이 정무수행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즉 대의제 체제의 실패인 셈이다. 대통령제의 기본특성은 삼권 분립이다. 우리는 대통령의 결정을 주로 국회가 견제한다고 생각하는데 국회 견제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사법부가 견제하는 것이 다른 선진국들의 예다. 미국의 경우 사법부가 견제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지지하든 안 하든 이런 식의 견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혼란스럽고 괴롭더라도 민주주의를 배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삼권 분립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는가.

장 교수=단기적으로는 대통령의 영향력이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또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헌재의 결정에 도전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즉 헌재 결정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든지, 수도가 불문헌법에 들어가는지 등이 논란이 될 것이다. 이런 논란 자체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도 전체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황 교수=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 균형발전, 공공기관 지방이전, 지방분권화 정책 등이 총체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통령 개인에게도 타격이다. 또 특별법을 합의로 만든 국회의 입법 능력도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 교수=그 점에서는 의견이 좀 다르다. 이번 헌재 결정은 국회가 만든 법률이 위헌 결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통제장치로서의 법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따라서 이것이 헌재의 존재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에 타격이라는 것은 우려할 필요는 없다. 즉 늘 이루어지는 견제 작용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방분권과 국토 균형발전 문제는 수도 이전과는 별개의 문제다. 프랑스의 경우 미테랑 대통령도 지방분권과 국토 균형발전을 추진했으나 수도 이전을 거론한 적은 없다. 수도 이전을 너무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회=참여정부는 신행정수도 건설과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이른바 3분정책-분권(권력 이전), 분산(돈.기능.사람의 이전), 분업(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기능 분담)을 추진했다. 이번 결정으로 3분 정책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황 교수=신행정수도 건설이 참여정부가 의도했던 대로 정상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면 중앙 정부기관의 지방 이전도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과거 정부의 국가 균형발전 정책들이 모두 실패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정부의 지방 이전이 실질적으로 된 게 거의 없다. 현 정부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공공기관들은 중앙정부가 이전할 때 따라가겠다며 보이지 않게 저항하고 있다. 3분 정책은 정부에 힘이 있을 때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힘을 잃었다는 점이 염려된다. 향후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어떻게 펼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장 교수=수도 이전은 국가 균형발전의 한 전략이다. 문제는 국가 균형발전은 합의가 된 의제지만 수도 이전에는 합의가 없었다. 대통령의 리더십 발휘는 합의가 형성된 이슈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가능하다. 합의가 된 이슈와 충돌이 있는 이슈를 구분하지 못해 문제가 됐다.

이 교수=수도 이전은 정책의 문제인데 너무 정치 문제화됐다. 대통령이 "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책의 탈정치화가 필요하다. 정책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는 게 헌재의 개입을 줄이는 것이다.

황 교수=최근 정책 추진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추진 주체의 미숙함이 아쉬웠다. 앞으로 정부의 선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포기하는 것이며, 둘째는 헌법 개정 절차를 밟아 다시 추진하는 것이며, 셋째는 범위를 축소해 공주.연기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다. 즉, 특별법이 아니라 기존의 도시개발법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만든 법으로 추진해온 부분에는 하자가 없다. 새로운 개념의 행정도시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장 교수=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다시 국민투표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큰 승부를 좋아하는 데 비추어 이번에는 단순히 수도 이전 문제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 교수=헌재의 결정에 의하면 앞으로 수도 이전을 다시 추진하려면 국회나 대통령의 발의와 국회의 동의, 국민투표라는 헌법 개정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

사회=국론 분열 상태를 어떤 방법으로 통합했으면 좋을지, 또 충청도 등 해당 지역의 실망감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가 당장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는데.

황 교수=수도 이전을 지지했거나 반대했던 사람들 모두가 냉정해져야 한다. 헌재의 결정은 정서적으로 느낄 문제가 아니다. 수도 이전은 공약으로 내세웠고 그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특별법을 만들어 정당하게 추진해 왔다. 정부나 여당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균형발전이라는 목표에 동의한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균형발전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전 지역은 이미 발표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부분도 모두 함께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장 교수= 우리 주변에는 공감대가 있는 정책 이슈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슈가 있다.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임기 초반에 수도 이전.언론개혁.국가보안법 등 갈등형 이슈를 택해 개혁을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국민적인 합의가 쉬운 이슈에 치중해 개혁을 하면 국론 분열을 덜 걱정해도 될 것이다. 다만 지금부터 헌재 무용론이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특히 인터넷이나 친노 세력에서 이런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반대 의사표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안 자체를 원점 자체로 돌리려고 하거나 절차나 제도 자체가 무용하다는 근본적인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교수=선진국에서도 사법부가 지속적으로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적합한지 따지고 있다. 그것이 선진 민주주의다. 프랑스 헌재는 연간 900건을 다루고 있다.

황 교수=신행정수도 건설을 포함해 지방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관련한 혁신도시 건설 등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으므로 꼭 실현돼야 할 것이다. 헌재 결정이 이렇게 났더라도 목표와 이념에 흔들림이 없이 추진해 주었으면 한다. 다만 헌재 결정을 존중해 국민적인 합의를 얻어낼 수 있는 과정을 도출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교수=지금 과천과 대전에 정부청사가 일부 나가 있으므로 이 같은 형태로 행정 청사 건설 같은 것은 가능할 것이다. 즉 정부 제4청사를 연기지역에 건설하는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또 수도권의 범위가 어디냐는 문제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파리의 영향권은 50㎞에 그쳤다. 그러나 고속철도(TGV)가 개통된 후 그 영향권은 200㎞로 넓어졌다. 그렇게 본다면 충청권의 절반은 수도권인 셈이다.

장 교수=수도 이전 등과 관련해 새로운 법률을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새로운 입법과 개헌을 패키지로 묶어 정치 전체 개혁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 균형발전 등의 총론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있으므로 대통령이 밀고 나갈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러나 명분도 있고, 다수당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있어도 다 통과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번 헌재 판결로 드러났다. 즉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나 국민의 이견이 큰 문제는 일시적인 지지로는 충분한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우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가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 신혜경 전문기자, 이영렬 기자 <hkshi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