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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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3. '10 10 10' 방식 융자

경남기업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옥포조선 문제의 해결을 도와달라던 김우중(金宇中) 대우그룹 회장에게 나는 당초 정부측의 정책적인 배려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었다.

정부가 일종의 특혜를 줄 것이라는 암시였다. 그러자 그가 대뜸 "정부를 믿어요?" 하고 반문했다.

"정부 말 믿었다간 망합니다."

그는 바로 문제의 옥포조선을 정부서 하는 말만 믿고 인수했다가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그의 형으로 교육부 장관을 지낸 김덕중(金德中) 아주대 총장과 나는 초등학교.중고등학교.대학교 동창이다. 이 때문에 김회장은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내 얘기도 못 믿겠느냐" 고 물었다.

"형님 얘기야 내 믿죠. 하지만, 아 그 자리에 얼마나 계시겠습니까?"

외환은행장을 과연 내가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런 게 사업하는 사람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말 맞습니다. 그럼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서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돈을 빌려 주세요. "

그는 은행융자로 발생한 손실을 메울 시드 머니를 달라고 했다.

10-10-10(이자율 10%로, 10년 거치 후 10년에 걸쳐 상환하는 방식)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런 방식의 지원에 대해 당시 특혜라는 지적이 있었다.

얼마 후 저(低)금리.저유가.저환율의 이른바 3저 호황이 왔다. 저환율 시대를 맞아 원화는 평가절상되고, 국제금리가 낮아져 해외서 돈을 빌리는 게 비용이 훨씬 싸 졌다.

원화 상환에 따르는 부담이 커 지자 대우측은 해외서 돈을 꿔 기한 전에 은행 돈을 갚아 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은행들도 덕을 본 셈이다.

경남기업의 2대 주주는 신기수(申基秀) 사장의 형인 신영수(申英秀) 한국일보 부회장이었다.

그는 나를 찾아와 어떻게 자신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경남을 대우에 넘기기로 했느냐고 화를 냈다.

나는 몇 천억이나 되는 경남 부실 문제에 언론계의 원로인 그가 연루되지 않도록 나름대로는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했다. 일부러 그에겐 연락도 하지 않았었다.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신사장을 구속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대주주가 담보로 제공했던 주식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했다.

설명을 듣고 난 그는 아무 소리 않고 돌아갔다. 중소기업은 1, 2천만원만 부도를 내도 잡혀가던 시절이었다.

도급순위 12위였던 경남기업은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말레이시아.스리랑카 등지에서 해외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주요 공사 중 말레이시아의 대형 시중은행인 말레이안 은행 본점 신축공사가 있었다. 경남이 부도가 나게 생겨 나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날아갔다.

말레이안 은행 행장실에서 골조공사가 거의 끝나가는 공사현장이 내다보였다. 화가 난 말레이안 은행장이 신사장더러 저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신네 은행으로서는 잘 됐다고 응수했다.

"우리 은행이 주거래은행으로서 책임지고 자금을 지원할 겁니다. 더욱이 경남보다 건전하고 더 나은 기업인 대우가 맡아 공사를 마무리할 거예요. 이제 안심해도 됩니다."

얘기를 듣고 나더니 자기네 나라는 정부가 나서 해결해 주는 게 없다며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했다.

그 후 그는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됐다. 당시의 인연으로 우리는 나중에 아시아개발은행(ADB).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총회 때 만나서도 가깝게 지냈다.

정인용 前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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