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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마오가 연아 이길수 없는 스포츠 심리학적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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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한국체대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드디어 마지막 피겨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스무살 동갑내기들의 진검승부가 시작되었다. 이미 조 추첨이 시작되기 전부터 묵언수행을 하는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금메달 확률이 80%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 등으로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되어 재미를 더 해 왔다.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피겨 스케이팅이 재미있을 때는 늘 라이벌이 있었다. 88년 캘거리올림픽에서 같은 곡을 사용하여 ‘카르멘 전쟁’으로 불리던 여자싱글 부분의 카타리나 비트와 데비 토마스, ‘브라이언 전쟁’으로 불렸던 ‘미스터 트리플 악셀’ 브라이언 오서와 ‘타노점프’ 브라이언 보이타노, 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의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이토 미도리, 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 내시 캐리건과 토냐 하딩, 98년 나가노 올림픽의 미셸 콴과 타라 리핀스키 등등. 지나치게 과열되어 뒷말이 많기도 하지만 어쨌든 역사는 늘 1등만을 기억해 왔다.

사실 피겨 스케이팅은 역사적으로 보나 문화적 배경으로 보나 선진국 서양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 상체보다 하체가 길고 키도 커서 보기에도 시원시원할뿐더러 어렸을 적부터 예술적인 연기력이 뛰어난 서양선수들을 따라 잡기란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그 사이 한국과 일본을 선두로 동양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국가의 집중적인 지원은 피겨 스케이팅에서의 동양 콤플렉스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키가 크면 보기에는 좋겠지만 균형 잡힌 다소 작은 몸매가 회전력에는 유리할뿐더러 이젠 동양선수들도 연기할 때 소위 ‘피겨’가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의 한일 라이벌전이다. 우선 둘 다 예쁘고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더 친근하다. 둘을 바라보고 있는 팬들도 라이벌전이 즐겁다. 점프 착지가 정확하고 표정 연기가 압권인 김연아와 여자선수들이 하기 힘든 트리플 악셀로 승부를 걸고 있는 아사다 마오의 좋은 연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주니어 시절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국제대회 성적을 토대로 아사다 마오에게 김연아는 이미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이 ‘벽’을 경기력 지각에서의 상대적인 제어변수라는 어려운 용어로 설명하지만 승부근성이 뛰어나고 자기 관리가 완벽한 김연아가 상대적으로 충분히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미 김연아의 연기가 끝난 뒤에 듣게 될 엄청난 박수소리에 신경 쓰고 있는 아사다 마오의 조 추첨 인터뷰에서 그녀가 느끼는 강한 심리적 압박감을 읽을 수 있다.

최근 국제 스포츠에 참여하는 여성의 수가 급증함에 따라 여자 운동선수들의 성격 특성을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연구과제가 되었다. 그 동안의 연구 결과 우수한 여자선수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보다 성취지향적, 독립적, 공격적이며 완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남자선수들의 경우 일반인들의 성격 특성과 별로 차이가 없어 여자 선수들 사이에 유독 라이벌이 많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러한 라이벌의 존재는 경기장에서의 소위 경쟁상태불안(competitive state anxiety)을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경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상대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연습도 더 열심히 하고 시합 때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된다는 얘기다. 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선수들은 운동 훈련 외에도 명상을 비롯해 심상훈련, 점진적 이완훈련, 생체피드백훈련 등의 심리훈련을 따로 한다.

라이벌(rival)의 어원은 강(river)과 그 강가에 사는 사람들(rivalis)이다. 두 사람도 강물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가뭄에는 힘을 합쳤던 강가에 사는 사람들처럼 이번 올림픽에서 선의의 경쟁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 바란다. 어차피 흐르는 강물처럼 역사의 시간도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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