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석·박정언 기자
한강서 피겨 시범보이다 ‘풍기문란’으로 연행된 적도
스케이팅의 역사는 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의 뼈로 만든 스케이트 형태의 용구가 북유럽 지역 유적지에ㅁ용구로 쓰기 시작하면서 ‘스케이팅’이란 스포츠가 탄생했다. 1863년 노르웨이의 한 스케이팅 클럽 주최로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가 열리며 본격적으로 기록을 겨루는 국제경기로 발전했다. 이후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하키의 형태로 진화했다. 1908년 런던 여름올림픽 당시 피겨 스케이팅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스케이팅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다. 스케이팅은 현재 4개 종목 26개의 금메달이 걸린 ‘겨울올림픽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 롱트랙과 쇼트트랙으로 구분되지만, 일반적으로 스피드 스케이팅은 롱트랙을 일컫는다. 경기 종목과 규정은 1893년 제1회 암스테르담 대회 당시 정해진 것이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다. 현재 이 분야의 겨울올림픽 정식 종목은 총 12개다. 남녀 각각 500·1000·1500·5000m의 경기가 있다. 남자는 1만m, 여자는 3000m 경기가 추가된다. 여기에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남녀 단체 추발 경기가 추가됐다.
스타 독일의 여성 스케이팅 영웅 클라우디아 페흐슈타인(38)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는 92년 캐나다 알베르빌 대회부터 겨울올림픽에 5회나 참가해 메달 행진을 이어갔다. 그가 딴 올림픽 메달은 금메달 5개 등 모두 9개에 이른다. 그러나 페흐슈타인은 경기력 향상을 위해 혈액 도핑(자신의 피를 몇 주 전에 뽑아뒀다가 경기 직전 다시 수혈하는 수법)을 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2년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1936년 조선빙상경기연맹이 창립돼 그해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겨울올림픽에 김정연 등 세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 부문에 처음 참가했다. 49년 핀란드 초청 국제빙상선수권대회에서는 문동성이 500m 우승을 차지해 첫 국제대회 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윤만이 은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이규혁· 이강석 등 세계 수준의 스타가 배출됐으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모태범과 이상화가 각각 남녀 500m, 이승훈이 남자 1만m 금메달을 따내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 겨울올림픽에서는 남녀 각각이 펼치는 싱글 경기와 남녀가 한 팀이 되는 페어, 아이스댄싱이 있다. 싱글과 페어 경기는 모두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스케이팅 점수를 합해 메달을 겨룬다. 쇼트에서는 선수가 점프·스핀·스파이럴 등 총 8개의 기술을 포함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 프리는 예술적 표현력과 기술력을 합산해 평가한다.
24일(한국시간)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움에서 열린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쇼트 프로그램에서 김연아가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우리나라 우리나라에서는 1927년 창경궁에서 서울피겨스케이트구락부 결성을 계기로 시작됐다. 최초의 피겨 스타는 홍용명(78)이다. 48년 한국 최초의 피겨 경기에서 우승했다. 한강에서 시범 경기를 벌이다 풍기문란을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등장은 피겨 스케이팅의 위상을 바꿔놓았다. 지난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김연아 편은 33.4%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보였다.
쇼트트랙
종목 겨울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은 총 8개의 종목이 열린다. 92년 올림픽 당시에는 남자 1000m와 여자 500m 개인전, 남자 5000m 계주, 여자 3000m 계주까지 4개의 종목만 있었다. 이후 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남자 500m와 여자 1000m가 추가됐고,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때 남녀 1500m가 추가됐다.
스타 최고의 스타는 전이경(34)이다. 전이경은 두 차례 올림픽에서 총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동성(30)과 안현수(25)가 3관왕으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선수는 한국과 악연인 아폴로 안톤 오노(28·미국)다. 오노는 2006년 올림픽까지 총 6개의 메달을 따낸 데 이어 이번 올림픽에도 500·1000m 은·동메달을 추가해 다관왕 기록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쇼트트랙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2006년 토리노 올림픽까지 나온 금메달 수는 총 32개. 이 중 약 53%인 17개의 금메달을 우리나라가 차지했다.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 쇼트트랙을 선보인 것은 일본에서 83년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부터다. 85년 본격적인 대표팀이 구성됐으며, 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 때 1000m(김기훈)와 남자 계주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채지훈·김동성·안현수·전이경·고기현·진선유·이정수 등 숱한 스타를 배출하며 쇼트트랙 최강국이 됐다.
아이스하키
종목 국제 경기로는 세계선수권대회, 유럽선수권대회, 겨울올림픽이 있다. 캐나다와 미국을 아우르는 북미하키리그는 수많은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스타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마지막 성화 주자로 등장했던 웨인 그레츠키(49)라는 불멸의 스타가 있다. 그는 99년 은퇴할 때까지 894골을 넣었으며 2002·2006년 올림픽에서는 캐나다팀 감독으로 아이스하키 무대에 올랐다. 그는 캐나다에서 ‘위대한 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캐나다 사람인 시드니 크로스비(23)는 그레츠키의 후계자로 꼽힌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밴쿠버 올림픽에서 눈여겨봐야 할 10인’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우리나라 1928년 도쿄제국대학의 아이스하키팀이 서울에서 시범경기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그해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대가 첫 아이스하키팀을 창설했다. 현재는 안양 한라와 춘천 하이원 등 두 실업 팀이 한국 아이스하키를 이끌고 있다.
투어 스케이팅
북유럽식은 투어 스케이팅의 장소를 마음대로 선택하는 데 비해, 네덜란드에서는 얼어붙은 운하와 호수 위로 지정된 코스를 따라간다. 투어 스케이팅은 자연의 얼음을 이용하는 경기의 특성상 올림픽 종목으로는 채택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