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저널리즘 리포트] “찢어진 눈의 동양인에 내줄 땅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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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25일 광주교대, 한 학생의 영결식이 있었다. 그는 15일 러시아에서 10대 3명에게 집단폭행 당한 뒤 숨졌다.

3년 전 옛 소련 우크라이나에서도 한국 청년이 살해됐다. “이 땅은 슬라브인의 땅이다, 눈 찢어진 동양 놈을 죽이겠다” 나치를 신봉하는 4명의 우크라이나 10대 스킨헤드의 소행이었다. 현지 영사의 노력으로 이들의 범죄는 밝혀졌다. 단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의 묻지마 살인 이른바 ‘인종 살인’이었다.

두 사건은 너무 닮았다. 러시아에서도 인종 살인이 벌어진 것일까? 대한민국의 대응이 궁금하다

주요 인물

▶김도현 영사 :‘인종 살인’ 판결 이끌어내는 데 기여. 러시아어 능통. 역사·문학에 조예 깊음 ▶루덴코 형사 : 스킨헤드 전담. 스킨헤드 조직에 대한 결정적 증언. 삼보 대회 우승 경력.

▶스킨헤드 4명 : 드미트리 누차(17·사건 당시 나이), 니키타 폴리슉(19), 일리야 골롭스키(19), 예고르 바르코프(18)


#프롤로그

25일 광주교대에서는 이 학교 학생인 고 강병길(22)씨에 대한 학교장(學校葬·사진)이 치러졌다. 강씨는 15일 러시아 어학연수 중 현지 청년 3명에게 집단 폭행당했다. 늦은 저녁 식료품 가게에 들렀던 그를 청년들이 습격했다. 금품엔 손대지 않았다. 전형적인 인종범죄 사건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외교통상부는 “현지 검찰이 곧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례로 볼 때 단순 폭행으로 처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벌어진 한인 폭행·살인 사건이 인종범죄로 처리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인 살인 사건이 인종범죄로 처리된 유일한 사례가 있다. 소련 시절 러시아와 한 국가였던 우크라이나에서다. 2007년 4월 유학생 강정권(31)씨가 10대 청년 4명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돈은 없어지지 않았다. 강씨도 가게에 들렀다 변을 당했다. 현지 경찰은 단순 폭행으로 처리하려 했다. 이후 대사관의 강력한 대응이 이어졌다. 2008년 11월 우크라이나 최초로 인종 살인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살인사건과 이번 러시아 사건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

기자는 지난해 ‘무국적 고려인’을 취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갔다. 우연히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접한 뒤 현지 취재와 자료수집을 병행했다.

#첫 인종살인 판결

2008년 5월의 우크라이나는 스킨헤드에 관한 얘기로 가득했다. 이달 5일 한국인 유학생을 살해한 청년 4명에 대한 고등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신문과 방송은 앞다퉈 특집 기획을 보도했다.

100여 민족이 사는 우크라이나는 인종 문제에 특히 민감했다. 이 때문에 ‘인종 혐오’를 법원에서 처음 인정할 것인지는 뜨거운 이슈였다. 축구팬이 빅 매치를 만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직접 보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방청권을 얻기 위해 법원 서기에게 보드카를 바치기도 했다.

재판장 내에는 격리된 철창이 마련됐다. 그 안엔 강정권씨를 살해한 4명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누차, 폴리슉, 골롭스키, 바르코프였다.

판사는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수사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이들의 살인은 명백하다. 나치 문신, 스킨헤드 활동 경력 등을 참고했다. 결정적으로 ‘눈 찢어진 놈(동양인)을 죽이겠다’고 사전 모의한 점이 확인됐다. 살인과 인종혐오 혐의를 적용해 네 명 모두에게 초범의 법정 최고형인 13년 형을 선고한다. 유족에게 100만 그리브나(약 1억5000만원)의 피해보상도 해야 한다.”

법원이 술렁거렸다. 철창 안에 있던 네 명의 청년이 일어나 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나치의 인사법.

“우리는 슬라브인이고, 이 땅은 슬라브의 땅이다. 찢어진 눈의 동양인에게 내줄 땅은 없다.”

폴리슉의 팔에 새겨진 나치문양이 드러났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살로 문신은 더욱 선명했다. 청년의 가족들이 김도현 한국 영사에게 다가가 욕을 했다. 침을 뱉으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2008년 1월부터 5월까지 발생한 인종살인은 19건이었다. 판결이 내려진 5월부터 12월까지는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해 11월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경찰 산하에 스킨헤드 전담특수대가 신설됐다.

#스킨헤드에 날아간 꿈

2007년 4월 23일 우크라이나 골롭세이스키 크라실롭스코 거리.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20일)이 사흘 지나고, 사망일(30일)이 이레 남은 날이었다. 스킨헤드의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그날 밤 10시. 강정권씨는 간단한 식료품을 사기 위해 가게에 갔다.

가게에서 나오는 강씨의 얼굴을 폴리슉이 주먹으로 강타했다. 나머지 청년들이 쓰러진 강씨를 밟기 시작했다. 누차가 높이 날아오르더니 두 발로 강씨의 머리를 짓이긴 뒤에야 그들은 완전히 물러났다. 누차는 굽 높은 군화를 신었다. 쇠사슬도 갖고 다녔다. 헤어 스타일은 스킨헤드(skin head)였다.

강씨는 결혼한 지 2년도 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삼촌의 영향으로 옛 소련 지역 전문가가 되기 위해 우크라이나 유학길에 올랐다. 성실하고 조용했다. 구급대의 연락을 받은 부인이 가게 쪽으로 뛰어갔을 때, 쓰러져 있는 남편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쌀을 사오겠다는 말이 남편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됐다.

청년들은 곧 경찰에 붙잡혔다. 누구는 미성년자고, 누구는 간질병 환자라는 이유로 모두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단순폭행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미성년자인 누차는 불구속 수사를 받으면서 새 여자친구를 만났다. 여자는 임신했다.

#사건은 반전되고

한국인을 살해한 우크라이나의 스킨헤드.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2007년 8월 김도현 우크라이나 영사는 담당 경찰을 찾아갔다. 경찰은 “피해자가 폭행을 당한 뒤 25일 만에 숨졌기 때문에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 폭행으로 보인다”고 했다. 피해자는 머리를 강타당해 숨졌지만, 조서에서 범인들은 다른 부분을 때렸다고 진술하고 있었다.

한국 대사관은 강력히 대응키로 결정했다. 허승철 당시 우크라이나 대사는 변호사 선임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내무부·국회·대검찰청에 공식 서한을 전달했다. 국제앰네스티를 통한 로비도 시작했다.

그해 10월 허 대사와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의 면담이 성사됐다. 허 대사는 “매우 중대한 외교 문제로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나는 해임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검찰총장은 김 영사와 담당 검사의 사건 회의를 주선했다. 11월 검찰은 피의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 방침을 철회하고 가해 청년들을 모두 구속했다.

#루덴코와의 만남

김 영사는 이 사건의 열쇠가 될 인물을 만나게 된다. 루덴코 형사. 그는 2005년 전국 삼보대회 우승자였다. 스킨헤드 범죄를 집중적으로 다뤄왔다.

루덴코는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폴리슉이 범행 다음 날에도 학교에 갔지. 친구들에게 ‘눈 찢어진 동양놈을 처리했어. 중국놈인 줄 알았는데, 한국인을 멋지게 처리한 거야’라고 말했다는군. 애들은 스킨헤드 조직원이야. 증거도 있지. 금품엔 손대지 않았지? 그건 스킨헤드의 순수성과 자부심을 표현한 거야.”

폴리슉은 소련이 붕괴할 즈음에 태어났다. 푸틴의 말처럼 “소련의 붕괴는 지정학적 참극”이었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은 문을 닫고 가족은 해체됐다. 폴리슉의 아버지도 직장을 잃은 뒤 아내와 아들을 버렸다. 모자가 겪은 지독한 가난, 이어서 찾아온 민족주의의 물결, 이민자 증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동양인, 실업난에 미래를 잃은 청소년. 그런 토양 속에서 폴리슉은 스킨헤드로 자라났다.

루덴코는 독한 보드카를 큰 유리컵에 따라줬다. 김 영사는 한번에 술을 마시고 루덴코의 이야기를 붙잡았다.

“스킨헤드의 산파는 2004년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혁명)이야. 광장에 몰려나온 젊은이들은 민주화된 조국이 유럽과 하나 되는 날을 맞이할 거라고 흥분했지. 그러나 유럽과 하나 되기는커녕 경제는 더 어려워졌잖아. 서유럽에 대한 배신감은 동양인에 대한 증오로 무섭게 옮겨갔지. 민족주의는 달콤하지. 복잡하지 않아서 좋아. 극우 정당은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스킨헤드는 청소년 사이에 트렌드가 된 거야. 조직원 중에 열두 살짜리도 봤다니까.”

그때 루덴코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부인이었다. 휴대전화를 물에 빠뜨려 고장났다는 투정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김 영사는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최신 휴대전화를 그에게 선물했다. 루덴코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김 영사는 보드카 큰 잔을 ‘원샷’으로 마신 뒤 루덴코의 손을 잡았다.

“지금 그 얘기. 법원에서 해 주십시오.”

루덴코는 호기롭게 “하겠다”고 했고, 약속은 지켜졌다.

“이봐 영사 양반, 강 이쪽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강 건너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되지.”

“파스칼의 ‘팡세’ ?”

“빙고!”

얼마 후 김 영사는 폴리슉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리더는 범인 중 가장 나이 어린 누차였다. 그는 어머니에게 “주도자가 누군지 밝혀야 아들이 산다”고 했다. 어머니의 설득에 폴리슉은 “동양인을 혼내주자고 사전에 모의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또 하나의 결정적 증언이었다. 그러나 폴리슉 역시 중형을 면치 못했다.

고등법원은 청년들의 인종 살인을 인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고 기습적으로 ‘인종혐오 혐의’를 삭제한 뒤 대법원에 상고했다.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 “우리 국민에 대한 외국인의 범죄가 훨씬 심각하다”는 강한 반론이 제기됐다. 허 대사의 후임인 박노벽 대사는 변호사 선임 기간을 연장했다. 현지 대사관에 국정감사를 나온 한국 국회의 외교적 노력도 더해졌다.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국 청년들에게 강대국 국민이 맞아 죽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인종 살인으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할지….”(김 영사)

#에필로그

지난해 6월 어느 날 김 영사는 아들(5)과 함께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강변을 걸었다. 나른한 오후 한때. 몇몇 현지 어린이들이 쫓아오며 소리쳤다.

“동양놈들! 여기를 떠나라.”

인종 문제는 여전히 잠재해 있었다. 어린이들의 말은 어른들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올 2월 러시아에선 한국인 강병길씨가 현지인들에 폭행 당해 숨졌다. 국정원은 해외 교민과 유학생에게 ‘스킨헤드 경계령’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겨울올림픽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강씨의 시신은 올림픽 열기 속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강인식 기자


스킨헤드는 …  유색 인종에 무차별 테러를 가하는 극단적 인종주의자들. 신나치주의를 신봉한다. 일반적으로 짧은 머리에 가죽점퍼ㆍ군화 착용. 유럽 등지에 유색인종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확산됐다.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

기존의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 문장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하는 기사 형식. 미국 등 선진국 언론매체에서는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식을 많이 쓰고 있다. 주요 인물을 깊이 추적해 사건의 이면을 보여주고, 사실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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