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피겨 1호 할머니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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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래 살기를 잘 했지.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국 최초의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홍용명(78·사진) 여사. 손녀뻘의 김연아(20)가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쇼트프로그램 세계 신기록을 세운 24일, 그는 강원도 삼척의 집에서 오후 내내 리플레이되는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또 봤다. 2분50초의 연기가 수없이 반복되는 동안 홍 여사는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역사가 된 자신의 인생을 회상했다.

◆65년 전 조선의 김연아=1932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난 홍 여사는 중국 베이징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 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한 뒤 맞은 첫 겨울, 서울 덕수궁 연못 스케이트장에 긴 부츠를 둘러멘 열세 살의 소녀가 나타나자 남성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아졌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쩍쩍 벌리며 남자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 그녀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며칠 내 그는 일대의 최고 스타가 됐다. 덕수궁이나 창경궁에 홍 여사가 떴다 하면 남학생들이 몰려들어 그녀의 부츠 끈을 묶어주려 몸싸움을 벌였다. 이화여중 피겨스케이팅부 창단 멤버로 스카우트된 그는 48년 첫 전국여자피겨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57년까지 4번의 대회를 모두 제패했다. “그땐 뭐 기술이랄 것도 없었어. 1회전 점프만 뛰어도 대단했으니까.”

한국 최초의 여자 피겨 스케이터 홍용명씨가 젊은 시절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 홍씨는 이 사진을 보며 “1950년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당시 개방된 한강에는 수많은 구경꾼이 몰려 여자 피겨 선수를 구경했다”고 회상했다. [홍용명씨 제공]

웃지 못할 촌극도 많이 겪었다. 52년 한 대회에서 ‘야한’ 옷차림의 그녀를 본 군인들이 밤중에 숙소를 덮치는 바람에 눈밭 위에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누워 겨우 화를 면했다. 이듬해에는 얼어붙은 한강에서 남자 선수 이해정과 페어 연기를 맞춰보다 ‘풍기문란’ 죄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일본 찍고 세계 무대로=홍 여사는 후진 양성을 위해 일찍 은퇴한 뒤 80년까지 피겨협회에서 일했다. 53년 코치 홍용명은 제자 5명을 데리고 무작정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당시 전일본선수권대회가 열린 삿포로로 이동해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러 왔다”며 대회에 참가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기어이 시범경기를 성사시켰다. “그때 일본 피겨스케이팅협회장의 말을 또렷이 기억해. 당신 같은 분이 있는 한 머지않아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일본을 넘어설 날이 올 거라더군.”

홍 여사는 내친 김에 세계 무대 진출도 시도한다. 67년 열한 살밖에 안 된 장명수를 데리고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 오스트리아 빈으로 날아갔다. 장명수가 연령 미달로 대회에 나갈 수 없게 되자 그는 이번에도 주최 측에 무작정 들이대 갈라쇼에 특별 출연하도록 했다. 부랴부랴 발레리나용 푸른색 페티코트를 구입해 색동저고리와 함께 입혔지만 현지 반응은 ‘대박’이었다. 낯선 동양 소녀의 앙증맞은 모습에 매료된 관중이 사인 행렬을 이뤘다.

“명색이 우리도 대회 참가자인데 태극기를 몰라 우리 자리에는 국기도 안 꽂아 주더라고. 어찌나 서러웠던지. 그런데 저거 봐. (TV 화면을 가리키며) 우리 태극기가 막 펄럭이잖아. 우리 연아가 해냈어. 연아에게는 아사다 마오(일본)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어. 음악과 표정, 몸짓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부드럽게 흘러가지.” ‘피겨 원조’의 눈에는 어느덧 굵은 물방울이 맺혔다.

삼척=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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