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관심법(觀心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만큼 남의 마음, 감정이나 생각은 들여다보기가 힘들다.

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독심술(讀心術.mind reading)에 대한 관심은 컸다. 상대의 마음을 잘 읽은 제갈공명은『삼국지』에서 적들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고 있으며 서양 마술에서 독심술은 오늘도 관객을 사로잡는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과학 권위지 뉴사이언티스트는 남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뇌세포군의 발견과 함께 최근의 '독심술' 연구 경향에 대한 기사를 냈다.

이탈리아 파르마대학 신경생리학 연구팀이 타인의 생각에 그대로 반응하는, 전혀 새로운 '신경세포군 거울(mirror neurons)' 을 발견했고 이 세포에 대한 연구가 독심술을 밝히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사는 그동안 철학.심리학.신경과학 쪽에서 밝히려고 노력한 '남의 마음 읽기' 의 미스터리가 과연 과학적으로 규명될 수 있겠느냐는 관련학계의 의견도 실었다.

우리 사회도 지금 마음 읽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TV 대하사극 '태조 왕건' 이 인기리에 방영되며 '내가 네 맘을 다 알고 있으니 내 뜻에 맞게 하라' 며 신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궁예의 관심법(觀心法)이 우스개로 아이들한테 퍼지더니 이내 정치권에까지 번지고 있다.

'대통령의 의중' 이니 하는 말이 횡행하는 정치권에 "나는 모든 사람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 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말을 한나라당은 "궁예가 관심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 받기도 했다.

대통령이 흡연은 건강에 안좋다고 하니 담뱃값을 또 올리겠다 한다. 정초에 담뱃값이 오를 줄 뻔히 알면서도 애연가들은 사재기를 극구 피했다.

좋아하는 담배에 대한 예우로 기꺼이 오른 값에 피우겠다던 애연가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담뱃값도 올리고 아무데서나 피우는 사람을 중죄인 취급하려는 당국의 처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집권자의 의중만을 나름대로 헤아렸다며 펼치는 행정은 썩어 문드러져 결국 패망하리라는 것을 '태조 왕건' 은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군주든, 신하든 서로의 마음을 읽어 위협하거나 비위에 맞추려는 위정자들의 눈과 귀가 어찌 백성들 쪽으로 열려있을 수 있겠는가. 남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대로 들여다보고 판단하기보단 자신의 마음부터 밝게 닦고 들여다볼 일이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