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너진 IMF '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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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97년 외환위기사태 이후 재기에 나섰던 실직 가장들이 다시 무너지고 있다.

퇴직금으로 구멍가게.비디오가게.음식점 등 소규모 자영업에 뛰어들었지만 경험이 부족한 데다 장기화하는 불황의 여파로 또 한차례 좌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정이 해체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 가정 해체=운송알선 업체를 운영하다 97년 12월 연쇄 부도를 맞은 崔모(40.경기도 고양시)씨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오다 빚쟁이들이 몰려오자 부인과 자녀들을 처가에 맡기고 노숙자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봄 건설업체에서 정리해고당한 崔모(46.대구시 칠성동)씨의 경우 새벽부터 인력시장을 헤매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자 최근 한평 남짓한 쪽방으로 옮겼다.

그는 "아내와 몇달 전 이혼했으며 고3인 큰아들도 집을 나갔다" 고 말했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3천5백98명이던 노숙자가 올 1월 말에는 3천9백18명으로 늘었다.

◇ 재기 실패〓지난해 1월 모 은행에서 퇴출당한 申모(45.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씨.

퇴직금 6천만원과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4천만원을 빌려 퇴직 두달 후에 전주 시내에 제과점을 차렸다.

그러나 한달 매출이 1백만원도 채 안돼 지난해 11월 가게문을 닫았다.

은행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다.

98년 비디오 대여점을 열었던 金모(36.전 자동차 영업사원.서울 광진구)씨도 최근에 가게 셔터를 내렸다.

인근에 들어선 대형 비디오 체인점이 개당 1천5백원인 대여료를 5백원으로 낮춰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퇴직금 3천만원이 고스란히 날아갔다.

비디오대여점의 경우 실직자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98년 3만3천개까지 증가했다가 지난해에는 1만2천개로 74%나 감소했다.

또 아파트단지 부근의 소형 슈퍼와 채소.생선가게들도 대형 할인점에 밀려 속속 문을 닫고 있다.

◇ 범죄.자살〓생활고 때문에 범법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야채행상을 하던 실직자 趙모(35.대전시 대덕구)씨는 지난달 21일 남의 집에 들어가 현금을 훔쳤다가 쇠고랑을 찼다.

지난달 30일 尹모(40.대구시 달서구)씨가 기계부품 공장을 하다 실패, 빚에 쪼들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실직 가장들의 자살도 잇따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소액 절도 건수는 17만여 건으로 99년의 두배였다.

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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