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남긴 음식 꼭 맛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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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점은 드러내보일수록 강점이 된다. 실내 분위기가 허름하면 더욱 허름하게 만들어 강조해야 한다. 음식맛만 있다면 허름한 것이 오히려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어설픈 실내장식으로 허름한 것을 가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신만의 특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을 모방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도 2등은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돈이 달라붙게 생긴 구석은 없었다. 돈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돈깨나 번 사람의 말투도 아니었다. 그러나 식당 이야기가 나오자 신바람을 냈다. 눈빛이 달라졌고 입에서 침이 튀었다. 그제서야 돈이 왜 그에게 덤비는지 보였다.

고기구이 전문점 '신씨화로'의 김원석(39) 사장. 삼겹살에 와인과 재즈를 접목하는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렸다. 말은 안하지만 수십억원을 벌었단다. 고기집 문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치켜세웠더니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늦었지요. 손님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우리들이 손님 수준을 깔본 거예요."

손님에 대한 김 사장의 배려는 통나무와 벽돌, 참숯화로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전부는 아니다. 여러 차례의 연구 끝에 테이블과 의자의 높이가 각각 70㎝, 43㎝일 때 가장 편안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손님들이 드나들기 쉽도록 테이블 간격도 50㎝ 이상으로 했다.

고기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냄새. 강제배연 후드를 달아 손님들의 옷에 냄새가 배는 것을 최소화했다. 벗은 웃옷도 얼마나 처치곤란한가. 테이블마다 옷 담는 바구니(사진(右))를 놔둬 깔끔히 해결했다.

자연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가맹점 문의가 잇따랐다. 2002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1호점을 연 이후 신씨화로는 2년여 만에 34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그 중에서 6개 점포는 직영점으로 2층 점포도 있고 10평 남짓한 소규모 점포도 있다.

"직접 운영을 해봐야 가맹점에 노하우를 전해줄 수 있죠. 게다가 가맹점들은 저마다 입지조건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직영점을 운영하는 겁니다. 각종 상황에 맞는 경험을 알려줘야 하잖아요."

김 사장은 아직 써먹지 않은 식당 운영 아이디어를 40여개나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일본을 이웃집 드나들 듯한다.

어릴 적 자가용이 3대나 될 정도로 부유하던 김 사장 집은 아버지의 운수업체가 도산하면서 급격히 어려워졌다. 학비는 물론 가족들의 생계비까지 책임져야 했던 김 사장은 대학을 휴학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막노동도 했고 보따리 장수도 했다. 그러다 일본의 음식문화에 눈을 떴다.

"하루 15~20끼를 먹고 다녔죠. 음식보다는 무형의 서비스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 식당은 아무리 작아도 깨끗하고 서비스가 뛰어난데 왜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할까'하는 의문이 갈수록 커졌지요."

김 사장은 스스로 일본식 서비스를 도입해보기로 결심한다. 이후 다방.매점.빵집.고기집 등 웬만한 식당 종류는 다 해봤다. 장안동에서 연 고기집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장사가 된다 싶으니까 건물주이던 20년지기 친구가 '나가달라'고 하더라고요. 눈앞이 캄캄했지만 어쩝니까."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야속하던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신씨화로는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김 사장은 요즘도 손님이 남긴 음식의 맛을 본단다. 맛이 없었기 때문에 남겼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제 조금 팔릴 만한 맛이 뭔지는 알겠는데 그런 맛을 제대로 만들려면 아직 멀었죠."

글=이훈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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