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 달라이 라마의 방미와 미-중 관계의 前途

중앙일보

입력

1999년6월 LA타임즈는 Jim Mann이 쓴 “잘못된 간섭: CIA의 티베트 파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은 “CIA는 티베트에 1950년대부터 1960년대 말까지 군사적, 금전적 지원을 해주었으나, 결국 중국의 티베트 지배는 동요하지 않았고, 티베트인들만 더 분노케 한 잘못된 간섭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티베트를 對중국 카드로 활용한 기원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2.18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예정대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접견했다. 이 회합의 후 폭풍은 곧 바로 국제 외교가를 강타했다. 미 언론계는 ‘언론통제’라고 발끈 했고, 중국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이번 행동은 중국 내정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중-미 관계를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화통신사는 “미국이 티베트 카드를 국내외 정치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오바마의 달라이 라마 접견은 참으로 이상한 만남이었다. 세계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리더임을 자처하는 미국의 통치자가 사랑과 용서, 평화를 외쳐온 한 종교계 지도자를 만나는 데 평소 잘 사용도 않는 방(Map Room)에서 언론에 공개도 못하고 비밀회합을 가진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일류의 고귀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추구한다는 사람들의 순수한 만남으로만 보기에는 정치적 냄새가 짙어 개운치 않다. 2007년 부시 대통령은 달라이 라마에게 의회가 주는 골드메달을 직접 전해주며 당당하게 그를 만났다. 불과 2년여 만에 세계 최강의 미국이 8,000억불의 미국 국채를 쥔 중국 앞에 이토록 초라한 제스처로 인권대국의 체모를 유지하려는 모습이 차라리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과의 경제교류, 국제이슈 협력 등을 고려해 그간 對중국 단골 메뉴였던 인권이나 민주화 문제 거론을 자제해 왔다. 그러던 오바마 정부가 최근 對대만 무기판매 발표, 달라이 라마 접견, 중국의 인민폐 절상 요구 등 패키지로 중국의 감정을 상하는 조치들을 취했다. 이는 얼마 전 메사추세스 보궐선거 패배와 오는 가을의 중간선거, 인권단체의 요구 등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 조치들 중 對대만 무기(패트리어트 미사일 114기, 블랙호크 헬기 60대 등)판매는 이미 부시정권 시절 그 규모가 결정된 것으로, 전투기나 잠수함이 제외되어 있어 중국에 그리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중국은 1천기가 넘는 미사일을 대만에 조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더욱 그렇다. 인민폐 절상요구도 항상 있어왔던 것으로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다.

문제는 오바마의 달라이 라마 접견이다. 이는 인권, 종교, 민족분열 등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3대 체제위협 요소’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국이 저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한 양국의 긴장은 “양국간 경제적 상호 의존도와 공동협력을 요하는 국제 이슈 등을 고려할 때, 그리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양국 학자들의 기본적인 견해다. 반면에 이제는 중국의 강성파워(경제, 군사력)와 외교적 위상이 급 부상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힘겨루기가 예상된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의 朱維群 통일전선공작부 부부장은 오바마가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면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이미 경고한 바 있고, 데이비드 램튼 존스 홉킨스대 교수도 이번 일로 양국이 1-2년간 어려운 시기에 놓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미국기업에 대해 제재를 가하거나, 곧 있을 미-중간 인권대화 연기 등의 보복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의 주요언론은 미-중간 벌어지는 간극의 상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 중-미 관계의 안정화 회복에 자국의 역할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미-중 관계가 조속히 냉정을 찾고 회복되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 기후변화 문제 등에 양국이 함께 기여하길 희망한다. 허나 우리는 여기서 잠시 다른 각도에서 달라이 라마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미 세계 50여 개국을 방문하면서 종교투어를 지속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는 불교계 등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의식해 달라이 라마를 입국조차 못 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로서 언제나 외부의 간섭에 완전 자유로운 국격을 갖추게 될는 지 실로 무거운 심경이다. 아마도 ‘소망이 가득한 여신’의 뜻을 가진 "라모 돈드럽(달라이 라마의 본명)"의 소망 (티베트 독립)만큼이나 우리의 완전한 자주권 행사도 어려운 상황은 아닌지 우리 다 같이 성찰해 볼 일이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