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전' 관람객 30만 육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수준 높은 미술애호가이자 평론가이기도 했던 시인 보들레르는 25세밖에 되지 않은 1846년에 '모던한 삶의 영웅주의' 라는 글을 통해 이미 '모더니티' 의 부상이 필연적이라고 예견한다.

전통과 늘 대립할 수밖에 없는 예술의 독창성 문제는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숙제였다.

보들레르는 전통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예술가가 살고 있는 '그저 그들의 지금의 삶' 에 우위를 둠으로써 그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의 미학의 출발점이 됐다.

일찍부터 무명의 마네를 이해하고 인정했던 보들레르는 1863년 아틀리에를 드나들면서 마네가 그리고 있던 '롤라 드 발랑스' 를 보았다. 롤라는 파리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던 스페인 무희였다. 보들레르는 그 그림에 매료돼 4행시를 지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미인들 가운데/ 나는 본다네, 친구여, 욕망이 흔들리는 것을/ 롤라 드 발랑스의 몸에서 반짝이는 것들/ 분홍빛 검은빛 보석들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매력을. " 롤라의 이 초상화는 바로 이 시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데뷔후 사망할 때까지 20여년간 마네를 줄곧 따라다닐 논란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이 시인은 화가를 고무하고 격려하는 편지도 남긴다.

"마네에게 전해주세요. 작건 크건 불구덩이 같은 조롱과 모욕이 최상의 것임을 잊지 말라고. "

1859년,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을 살롱에 처녀 출품한 마네는 보들레르와 이야기를 나누던 친지의 거실에서 낙선 소식을 들었다.

둘은 그 소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들레르는 "화가는 그저 자신이면 족하다" 고 격려해주었다. 마네는 "내 말이 그말이죠. 이 그림에서도 나는 나죠" 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거렁뱅이 술주정뱅이를 대충 그린 듯한 그 그림의 주제와 기법은 제도권 평론가들의 취향과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보들레르의 시 '넝마주의의 포도주' 를 읽고 공감해야만 비로소 그릴 수 있는 '그저 지금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던 시간, '그들의 지금(여기서 모던이라는 말이 나왔음)' 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예술의 한 세계를 이뤄낸 점에서 시인과 화가는 선구자였다.

척도(modus)와 때(ernus)의 합성어인 모던이라는 단어를 보들레르는, 견자(voyant)의 예언적인 지침으로 예술가들에게 남겼다.

마네는 새로운 아름다움, 즉 '그림은 진짜 같은 환영(이를테면 관객이 그림 속의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지금 나만의 그림임' 을 보여 주려 했다. 관객이 '자신들의 지금 이야기' 를 바라보며 누릴 수 있도록, 보는 방식을 바꾸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때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한 세기를 풍미한 모더니즘의 개안(開眼)이다.

임혜정 <불문학자.전시코디네이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