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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와 떠난 추억 여행, 서울의 밤은 뜨거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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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3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미국의 전설적인 팝·록 밴드 ‘시카고’의 내한 공연 모습. 7년 만의 공연에 3000여 명의 중·장년 관객들이 몰렸다. 1967년 데뷔한 이 밴드는 40여 년 간 전 세계에 1억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했다. [위네트웍스 제공]

시간은 뒷걸음 쳤고, 추억은 되살아났다. 23일 밤 미국의 팝·록밴드 ‘시카고(Chicago)’는 시간을 반주 삼아 젊음을 되새겼다.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7년 만의 내한공연. 데뷔 43주년의 전설적 그룹을 반기듯 3000여 명의 중·장년 팬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반백의 시카고 멤버들과 팬들은 그 선율에 실려 2시간에 거친 ‘타임여행’을 떠났다.

출발은 1969년이었다. 데뷔 싱글 ‘퀘스천(Questions) 67 and 68’로 무대를 열었다. 록 사운드에 브라스가 더해져 재즈와 록이 어우러진 독특한 음색을 냈다. 시카고는 그간 록과 재즈·펑키가 스미고 짜이는 새로운 유형의 밴드음악을 선보였다. 이날에도 브라스(트럼본·트럼펫·색소폰)와 록(기타·드럼·베이스)이 빚어내는 합주는 어느 한곳 버성김 없이 깔끔했다. 초기 스타일을 대표하는 곡 ‘아임 어 맨(I’m a man)’에서도 브라스·록 음악은 서로를 단단히 감쌌다. 40여 년 단련된 멤버간의 호흡이 빛났다.

원년 멤버인 제임스 팬코우는 주름이 잔뜩 잡힌 얼굴로도 전성기 수준의 깊고 너른 트럼본 독주를 소화해냈다. 그는 서툰 우리말로 “한국 와서 좋아요. 여러분 멋져요”라고 또박또박 말하기도 했다. 팬들이 환호하자 팬코우가 “더 원하세요?”라고 되물어 열광적인 분위기를 이어갔다.

공연은 어느덧 70년대 중반에 당도했다. 76년 발표된 ‘이프 유 리브 미 나우(If you leave me now)’의 익숙한 키보드 전주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시카고가 브라스·록 스타일에서 벗어나 팝 발라드의 옷을 입힌 노래다. 잔잔한 키보드 선율에 어쿠스틱 기타의 리듬이 스며들었다. 70·80년대 대학 시절을 보낸 중년 관객들은 첫사랑을 돌아보는 듯 감상에 젖었다.

‘유아 디 인스퍼레이션(You’re the inspiration·1984)’이 흘러나오면서 시간은 80년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시카고의 대표곡인 ‘하드 투 세이 아임 소리(Hard to say I’m sorry·1982)’가 연주될 때 객석과 무대가 거대한 합창단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컬 제이슨 셰프는 고음을 넘나들며 무대를 압도했다. 다만 50~60대에 이른 멤버들은 시간과의 힘겨운 싸움조차 숨길 수는 없어 보였다. 공연 후반으로 갈수록 보컬이 종종 갈라지는 등 버거워했다.

이날 시카고의 세월과 중년 관객들의 세월은 온전히 포개졌다. 공연 막바지 ‘겟어웨이(Getaway)’ ‘새터데이 인 더 파크(Saturday in the park)’ 등 강한 비트의 음악이 흘러 나오자 중년의 팬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전설의 밴드 시카고와의 한바탕 추억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전설이 아닌 현실로서 말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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