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왜곡한 캘리포니아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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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열흘이상 긴급절전 3단계를 발동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긴급절전 3단계란,전력예비율이 1.5%이하로 떨어지면 어느 때라도 전력공급 구역별로 단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전력비상사태인 것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사태때문에 언뜻 보면 시장위주의 구조조정이 문제의 원인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정확한 상황판단없이 이제 전력구조조정의 첫걸음을 내딛은 우리에게 마치 구조개편을 늦추자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캘리포니아주의 시행착오를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보다 완벽한 구조개편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삼아야 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이번 사태 때문에 캘리포니아가 민영화를 포기하고 공영화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 파악이 잘못된 것이다. 금년 1월8일자 데이비스 주지사의 연두교시에 따르면 주정부의 규제가 다소 강화된 것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우리도 구조개편을 늦추자고 주장하거나 민영화를 막아야 한다는 결론은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에 불과하다. 일단 몇 가지 민영화 반대논리에 대해 이번 캘리포니아 사태와 연관지어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발전회사의 매각규모가 700만KW로 너무 커 매각이 어렵다는 지적이나 전력구매계약의 경직성이 설비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옳은 부분도 있지만 민영화의 반대논리는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규모를 좀 더 세분화하여 매각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구매계약의 경우 경쟁체제가 되면 자연적으로 탄력적인 시장거래로 전환될 것이다.

또한 예비율 부족에 대한 우려도 비약이다. 캘리포니아의 예비율 부족은 과도한 환경규제와 주변 지역보다 높은 발전비용이라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시장체제가 근본적으로 예비율 부족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미국 동부,영국,호주,스페인 등 여타 구조개편 시행지역이 보여주고 있다.

구조개편 이전부터 캘리포니아는 갈력한 환경규제로 인한 높은 발전비용으로 발전설비 확충이 저해되어 왔던 지역이었다. 구조개편 및 전력시장의 광역화를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였지만 인근지역에서 싼 전력구입이 가능해지자 역설적으로 캘리포니아 내부의 설비투자는 더욱 감소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외부와의 계통연계가 불가능하므로 인근 지역에서의 싼 전력구입을 기대하고 설비투자를 유보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예비율이 낮아지면 높은 가격을 기대하고 초과이윤을 선접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늘리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시장원리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체제가 되면 전력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많다. 그러나 가격이 수급에 따라 변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바람직한 일이다. 가격에 따라 소비자는 소비를,생산자는 설비투자를 조절하게 되어 전체적으로는 수급을 안정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나 계절,장소 등에 따라 전력의 상대가격이 달라야지 무조건 낮은 전력가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번 캘리포니아 사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필요성을 더욱 확인시켜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캘리포니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우리도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규제에 따른 시장왜곡,NIMBY 현상으로 인한 발전소 신설의 어려움,경제논리를 우선하는 정치논리로 인한 투자가치의 불확실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전력산업 규제완화를 “완전한 실패”로 규정하고 책임을 시장에 떠넘기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데이비스 주지사의 정치논리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전력도매가격이 원가상승으로 4배나 올랐지만 정치논리를 앞세워 소매요금을 동결시켰기 때문에 도매를 담당하던 전력회사가 부도직전에 몰리자 다른 주의 전력회사가 공급을 줄인 것이 현재의 상황을 불러왔음을 상기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시장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 타협을 시도했던 규제완화 절차상의 허점이지,결코 시장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시장보다는 정치적 힘이 곧잘 우선하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교훈이다.

장현준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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