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전자파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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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체 유해 여부로 20여년간 논쟁을 벌여온 전자파가 ‘안전 우선’여론에 밀려 각국에서 잇따라 족쇄가 채워지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에 이어 우리나라도 이달 1일부터 ‘전자파 인체보호기준’시행에 들어가는 등 전자파 규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과학자들의 유무해 논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지만 흡연처럼 나중에라도 암 발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원인으로 밝혀질 것에 대비하자는 예방차원이다.

유해론자들은 이를 두고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쪽으로 정부기준이 기울어지고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나=전자파의 일종인 X선이나 감마선은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 많이 쏘였을 경우 태아 기형 등 세포에 악영향을 끼친다. 레이더 기지나 전자레인지에 사용하는 마이크로파도 세기를 강하게 하면 음식물이 익는다.

그래서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 시비는 전자파의 세기가 약한 휴대폰·TV·컴퓨터·고압송전선 등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인체가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자파 유해성 논란에 불을 지핀 고압 송전선의 경우는 50∼60Hz(전자레인지용은 25억Hz)에 불과한 극저주파다.

그러면 전자파의 어떤 성질이 유해한 것일까.

유해론자들은 전자파를 구성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을 주범으로 보고 있다. 전기장은 전압이 높을수록, 자기장은 전류가 높을수록 많이 생긴다. 전기장은 전기가 통하는 구리 등 금속, 또 식물이나 생체에 의해 상당부분 흡수·차단되지만 자기장은 자석의 힘처럼 거의 모든 물질을 통과한다. 자기장은 일반인들이 막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인체에 유해하다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유도 전류론’이다. 인체는 물이 70%로 전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고압 송전선 가까이 있으면 몸에 송전선에 흐르는 유도전류가 흐르고, 이 전류는 인체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칼륨·나트륨 등 중요한 이온들의 정상적인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고압 송전선 밑에 있으면 몸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유도 전류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기장은 자석이 쇳가루를 잡아 당기듯 몸 안의 철 성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유해론자들은 고압 송전선 뿐 아니라 각종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이런 전기장과 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됐을 경우 호르몬·면역체계가 깨져 백혈병·림프암·뇌암·기형아 등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자파의 인체 영향은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역학조사나 경험적 관찰에 의해 추정될 뿐이다.

◇휴대폰 인체 보호기준은 ‘열’발생에 초점=각국이 만든 전자파 인체보호기준 중 휴대폰은 일정시간 전자파에 노출됐을 경우 체온상승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휴대폰이 전자파를 발생하는 전자기기 중 머리에 가장 바짝 붙여 쓰며,사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뇌종양 환자들이 휴대폰 탓이라며 천문학적 액수의 피해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휴대폰 기준치는 휴대폰을 30분간 사용했을 때 체온을 섭씨 1도 올리는 전자파 인체흡수율(4W/kg)의 몇분의1로 정하고 있다. 의학계에서 정상 체온 1도를 변하게 하는 물질이나 원인은 몸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기준선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와 미국·캐나다·호주는 이의 2.5분의1인 1.6W/kg으로 2W/kg인 유럽보다 더 엄격하다. 정통부 관계자는 “이 정도면 체온 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국내 생산 휴대폰은 모두 이 기준 안에 든다”고 설명했다.

사실 휴대폰·컴퓨터 등 전자제품을 사용하게 되면 머리나 얼굴 부분의 피부 온도는 오히려 내려간다.국내 실험에서는 10여분간 휴대폰을 사용한 뒤 피부 체온을 측정한 결과 섭씨 0.4도 정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피부 온도는 떨어지지만 뇌 속 온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실험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전남대 전자공학과 임영석 교수팀이 휴대폰에 의한 뇌의 온도 변화를 컴퓨터로 모의실험한 결과 섭씨 0.04도 정도 올라 갔다.휴대폰 안테나를 머리에 더 바짝 붙이면 온도는 이보다 더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인은 아직 모른다.단지 마이크로파의 전자파가 인체의 신경·호르몬계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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