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수현씨 집안 3대 일제때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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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를 기리는 애도 물결이 일본 열도에 흐르고 있다.

도쿄(東京)의 전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 유학생 이수현(李秀賢.27.고려대 무역과 4년 휴학).

빈소가 차려진 도쿄 아라카와(荒川)구의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赤門會)에는 교포와 일본인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마이니치(每日)신문.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28일에도 그의 죽음과 부모에 대한 얘기를 크게 다뤘다.

그가 다닌 아카몬카이 이사장인 재일교포 박시찬(朴時贊)씨는 "1백만엔을 내겠다고 약속한 일본 할아버지 등 15명의 성금이 왔고, 李씨의 계좌번호를 알려달려는 전화가 잇따랐다" 고 말했다.

또 "李씨의 의로운 죽음이 이기주의가 만연한 일본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준 것 같다" 고 덧붙였다. 마이니치신문은 성금을 내겠다는 전화가 몰리자 이날 성금계좌를 개설했다.

◇ 줄이은 조문〓이날 1백여명이 빈소를 찾았다. 오후 4시 정부 대표로 조문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유족을 위로했다.

중의원의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여)의원은 "막내아들이 사고를 목격하고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와 급히 달려왔다. 마음속 깊이 사과드린다" 며 고개를 숙였다.

◇ 악연을 의(義)로 승화〓李씨 집안이 일본과 악연(惡緣)을 맺어온 사실이 밝혀져 그의 죽음이 의미를 더하고 있다.

빈소를 지키던 아버지 이성대(李盛大.64.회계사무소 근무)씨는 "나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원인 모르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일제 때 탄광으로 징용당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 고 밝혔다.

또 "나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여섯살 때인 1944년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며 "이런 악연을 딛고 수현이가 의로운 죽음을 택한 것은 정말 이상한 인연" 이라며 울먹였다.

어머니 신윤찬(辛潤贊.54)씨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지만 헛된 죽음은 아니라고 믿는다" 며 흐느꼈다.

李씨의 장례식은 29일 낮 아카몬카이 학교장으로 치러진다. 그의 부모는 유해를 화장한 뒤 30일 부산으로 귀국한다.

◇ 네티즌들의 격려〓李씨의 개인 홈페이지(blue.nownuri.net/~gibson71)에는 28일 하루에만 1천5백여명이 애도의 글을 올렸다.

'김영욱' 이라는 네티즌은 "이 홈페이지를 영원히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로 남겨 대한민국의 참된 청년들을 소개하는 곳으로 만들자" 고 했다. 미국 뉴욕의 한 교민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고 말했다.

李씨의 여자친구 한정임(27.가수)씨는 '하늘나라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너는 있을거야. 널 위해 노래부를게' 라고 썼다. 李씨의 모교 고려대 홈페이지에는 '장학기금을 만들자' 는 등 20여개의 글이 올랐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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