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외국 투자기업 골라 받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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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실제로 중국 정부는 저임금을 노린 단순 수출임가공 투자는 서부 내륙으로 돌려버린다.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투자는 “다른 나라에 가보라”며 아예 문전박대한다. 몇 년 전부터 동부 연안 지역에서는 첨단기술 투자가 아니면 돈을 싸 들고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중국 정부가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에 따라 동부 지역에선 부가가치가 높은 투자만 가려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한 걸음 더 나갔다. 첨단기술 투자라도 골라서 받아들이겠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철강·석유·자동차 업종에서 외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공장 증설 방안에 대해 중국 정부는 “심사를 거쳐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로 가장 많이 애를 태우는 게 액정표시장치(LCD) 업종이다. 엄청난 잠재 수요를 갖춘 중국 시장을 겨냥해 중국 토종 기업뿐 아니라 한국·일본·대만 업체들의 투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어서다.

공장 하나 짓는 데 30억∼40억 달러가 들어가는 LCD 공장은 지방정부엔 거대한 세수원이다. 고용 효과도 크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들은 여전히 투자를 갈망한다. 그렇지만 중국 중앙정부는 투자 과열을 막는다는 논리로 선별적으로 허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이르면 3월 중 자국 기업 3개와 외자 기업 2개 등 5곳에만 공장 신설 허가를 내줄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를 희망한 국내외 9개 기업 중 국내 기술 기반 확충을 위해 BOE(베이징)·TCL(광둥성 선전)· IVO(장쑤성 쿤산) 등 토종 업체 3곳은 무난하게 허가를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나머지 2장의 티켓을 놓고 한국의 삼성전자(장쑤성 쑤저우)·LG디스플레이(광둥성 광저우), 일본의 샤프(장쑤성 난징), 대만의 폭스콘(쓰촨성 청두)·AUO(광둥성 선전)·CMO(광둥성 포산) 등 6개 업체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대만 기업 한 곳에 혜택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마지막 한 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 업체가 다퉈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한 업계 관계자는 “LCD 투자 승인에는 국적과 투자 지역 등 변수가 워낙 많아 막판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삼성과 LG의 투자를 승인했다. 잘 키운 딸 같은 한국의 대표 전자업체를 엄선해 중국에 ‘시집’ 보낸 셈이다. ‘두 딸’이 중국에서 소박 맞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중국 지방정부와 손잡고 ‘친정 부모’의 입장에서 끝까지 밀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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