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수하다는 의사들, 왜 외국 의사와 경쟁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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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모든 경제 주체가 자신의 경쟁 상대는 국내가 아니고 글로벌 사회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김중수(63·사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 대사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우물 안 개구리’ 마인드를 꼽았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려면 국내 경쟁에만 신경 쓰는 내부 지향적 자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사는 이달 8~12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가 출국을 하루 앞둔 22일 저녁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이명박 정부의 첫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뒤 2008년 9월 프랑스 파리의 주OECD대표부 대사에 부임한 그는 1년 반 동안 해외에서 지내면서 ‘개방론자’로서의 신념이 더 굳어진 것 같았다.

“우리 스케이트 선수들도 올림픽에서 잘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밖으로 나가 세계와 경쟁해야 합니다. 공직사회든, 공기업이든 경쟁을 하지 않는 조직은 (변하지 않고) 다 똑같습니다. 의료산업도 그래요. 우리 사회의 가장 우수한 인재가 의사들인데, 왜 미국·중국의 의사와 경쟁하려 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가 경쟁적으로 되려면 같은 일을 하는 외국인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좁은 한국 안에서가 아니라 세계와 경쟁해야 먹고살 수 있는 나라예요.”

그는 현지에서 유럽의 소국들을 보면서 한국을 많이 떠올렸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6만 달러에 달하는 벨기에·스위스 같은 나라도 엄청나게 긴장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을 했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주위의 큰 나라에 휘둘렸던 경험 탓이다. 그는 “한국은 태고 때부터 가진 게 없어서 저절로 먹고사는 나라는 아니었다”며 “중국·일본·러시아 같은 큰 나라 사이에 있는 만큼 항상 마음을 놓지 말고 긴장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사는 그래서 국내에서의 제로섬 경쟁에 매몰되지 말고 밖으로 나가 국가의 부를 늘리는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을 추구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97년 OECD 가입 준비소장을 맡아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선진국 클럽’에 서둘러 가입하기 위해 과욕을 부린 것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엔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자격이 부족했다면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낼 수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대사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지난해 6월 한국이 주도해 OECD 각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녹색성장 선언문’과 지난해 11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을 꼽았다. 개념조차 생소했던 ‘녹색성장(Green Growth)’을 OECD의 주요 정책 어젠다로 만들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OECD는 회원국이 30개나 되기 때문에 모두가 동의하는 공동선언문(코뮈니케)을 2001년 이후 한 건도 내지 못했다. DAC 가입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베푸는 나라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개도국들에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녹색성장과 관련해 녹색만 있고 ‘성장’은 안 보인다는 우려에 대해 “녹색성장의 기본은 ‘성장’에 있다”고 강조했다. 녹색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만들자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성장의 싹이 보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가 지금 맡고 있는 대사직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얻은 14번째 일자리다. 그중 일곱 번은 한림대 총장 등 ‘기관장’으로 지냈다. 공직과 교직을 오가며 한국개발연구원(KDI)에만 네 차례 입사하는 기연(奇緣)을 맺으며 연구위원과 KDI 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원장을 거쳤다. 그러다 보니 그는 미래 대비용 연금이 없다.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으로 갈 때마다 일시금으로 연금을 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차례 직장을 옮겼지만 한 번도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간 적은 없다”고 했다.

김 대사는 차기 한국은행 총재의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전혀 얘기 들은 게 없다”고 했다. 기준금리 인상 등 한은과 관련된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현직 대사 입장에서 답변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좌우명은 ‘낭중지추(囊中之錐)’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이다. 말을 앞세우지 말고 묵묵히 자기 역할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자연스레 알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글=서경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김중수 대사=1947년 서울생.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KDI에서 일하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경제비서관(1급) ▶OECD 가입 준비소장 ▶재정경제원 부총리 특보를 지냈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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