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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자본과 담 쌓은 사모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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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오는 12월 초부터 허용되는 사모펀드(PEF) 시장은 당분간 은행의 독무대가 될 전망이다. 관련법이 개인의 투자 한도를 너무 높게 잡아 진출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사모펀드 시장에 구조조정 경험이 충분한 국내 자금을 참여시키는 취지로 사모펀드를 허용했지만 미국 론스타와 같은 전문적인 민간회사보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은행들이 대거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12월 초 3000억~1조원 규모의 'KDB 밸류 제1호 사모투자전문회사(가칭)'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10% 안팎을 출자하고 각종 공제회.생명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구조다. 또 다른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우리.국민.하나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들도 잇따라 1000억~20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조성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권이 사모펀드를 주도하는 것은 투자 인원과 금액 중 한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되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선 개인에 대해선 20억원 이상, 법인에 대해선 50억원 이상으로 투자 금액을 제한해 개인의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부원장은 "한번 투자하면 최소한 3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사모펀드의 속성 때문에 도입 초기에는 민간 자본의 투자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 등은 자체적으로 조성한 사모펀드에 자기들이 보유 중인 부실 기업을 집어넣는 구상을 하고 있다"며 "이 경우 경제 외적인 고려들이 작용하면서 경제원리가 왜곡되고 투자 대상의 값만 올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 사모펀드로는 미래에셋 계열사인 맵스자산운용.KTB자산운용.칸서스자산운용 등 세 곳 정도가 고작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외국에선 민간 자금이 사모펀드를 주도하고 있다"며 "투자 제한을 완화해 무기명 채권 등으로 흘러간 시중 부동자금과 우량기업의 유휴자금을 끌어들여야 사모펀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소수의 투자자가 조성한 자금으로 부실 기업이나 경영 성과가 나쁜 기업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을 통해 가치를 높인 다음 경영권을 되팔아 수익을 내는 투자 수단이다. 외환위기 이후 칼라일.뉴브리지.론스타 등 세계적인 사모펀드가 국내 은행과 기업, 사무용 빌딩 등을 사들였다 되팔아 많은 수익을 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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