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빠진 프랑스·아프리카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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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로랑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DRC)대통령의 갑작스런 피살로 카메룬 수도 야운데에서 18일 개막한 제21회 프랑스.아프리카 정상회담이 반쪽 잔치로 전락했다.

2년마다 열리는 이 정상회담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49개국 정상들과 프랑스가 상호협력을 논의하는 행사다.

당초 DRC 내전의 조속한 종결이 이번 회담의 주의제였으나 분쟁 해결의 열쇠를 쥔 당사자가 회담을 이틀 앞두고 피살, 주인공이 빠진 연극처럼 돼버린 것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회담에서 '당초 DRC의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부룬디의 피에르 부요야 대통령과 카빌라의 회동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카빌라를 지원하던 짐바브웨의 로베르 무가베 대통령은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귀국했고 DRC와 국경을 접한 앙골라의 호세 산토스 대통령은 대리 대표를 보내기로 계획을 바꿨다.

반군을 지원하는 우간다와 르완다는 아예 처음부터 참석을 거절해 회담에 참여한 아프리카 정상은 25명에 불과하다.

이 바람에 회담은 김이 빠졌으며 아프리카 정상들의 맏형 노릇을 하려던 시라크 대통령도 풀이 죽었다.

이번 회담에서 과거 프랑스의 아프리카에 대한 간섭 정책과 일부 국가들과의 밀거래를 청산하고 세계화 물결 속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려는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대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법 무기 거래와 부패 방조에 대한 비난의 먹구름이다.

앙골라에 무기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남까지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앙골라 게이트' 로 프랑스 사회가 떠들썩한 상황에서 카메룬에도 7천만달러(약 8백40억원) 상당의 무기를 밀수출했다는 의혹이 또 터져나온 것이다.

파리에서 짙어지기 시작한 먹구름은 아프리카로 남하해 정상회담장에 소낙비를 퍼부을 태세다.

가봉의 엘 하지 오마르 봉고 대통령은 벌써부터 "프랑스는 부패 문제에서 지금까지 결코 피부만큼 희지 않았다" 며 프랑스의 아픈 곳을 찔러대고 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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