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포 '눈물의 영상 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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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말 다 컸구나. 떠나올 땐 걷지도 못했는데…. "

불법체류 6년째인 중국동포 林모(62.서울 금천구 가산동)씨는 손자(7)의 모습이 비친 화상전화 모니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있는 손자가 "할아버지,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건네자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건설현장 인부로 일하던 그는 석달 전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끊겨 동료들의 쪽방을 전전하는 신세. 하지만 이날 중국의 가족들에겐 "잘 지내니 아무 걱정말라" 고 되풀이했다.

3년째 불법체류 중인 安모(52.여.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는 중국 지린(吉林)성의 가족들에게 "너무 잘 먹어 살이 쪘다" 며 거짓말을 했다.

충남의 한 어장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친 후 지난해 말 상경했지만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취직을 못하고 있는 그다.

게다가 애써 모은 5백만원도 사기를 당해 날려버리고 속병까지 얻었다. 安씨는 모니터에 비친 남편과 아들의 모습을 어루만지며 서럽게 울었다.

18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국제 전화센터에 몰려든 60여명의 중국동포들은 바다 건너에 있는 그리운 가족들과 '영상 상봉' 을 했다.

국제전화 서비스업체 인퍼텔(대표이사 백종훈)이 불법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을 위해 서울 가산동. 대림동에 있는 국제전화센터에 12대의 화상전화기를 설치, 무료 화상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것. 중국 쪽엔 동포들이 집단거주하는 헤이룽장성.지린성 등에 같은 대수의 화상전화기를 설치했다.

白대표는 "경기침체로 더욱 생활이 어려워진 중국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료서비스를 준비했다" 며 "화상전화를 이용한 영상 상봉 방식이 남북 이산가족에게도 이용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은 약 8만9천명. 서울 가산동.대림동.가리봉동 등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정현목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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