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금융, 이정도는 돼야] 주간사의 공모기업 지분소유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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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투명한 시장은 투명경영에서 시작된다.

투명경영의 1차적 목적은 기업의 경영의사 결정과정과 경영결과를 투명하게 공시해 주주는 물론 미래의 주주들에게 현재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불확실성과 의구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금을 투입할 주주나 금융기관은 없다.

회계기준 개정, 분기별 재무제표 공시 등 제도적 틀에 관한 그동안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은 분식회계를 일삼아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해 왔다.

한보 사태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고, 지난해 대우 사태는 부실회계의 극치를 보여줬다. '한국 기업은 실사 때마다 내용이 달라진다' 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적할 정도다.

지난해 상반기 상장기업의 감사의견 중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을 받은 기업의 수가 1999년의 10배에 이른 점은 그나마 투자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감독당국이 부실회계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시장의 투명성은 발행시장에서부터 시장의 모든 참여자가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주간사가 신규 공모기업의 지분을 소유하면서 기업실사를 하는 게 우리나라 증권발행 시장이다. 현행 규정은 주간사의 지분을 6개월 동안 보호예수함으로써 혹시 나타날지 모를 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에 대해 주간사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실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금융 선진국은 이 경우 제3의 독립적인 기관에 기업실사를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회계법인의 경우 피감사 법인에 대해 단 한 주의 지분 소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일부이긴 하지만 감사보고서의 허실을 코스닥 등록을 심사하는 인력이 잡아내기도 한다. 이런 일이 많아지면 감사기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마저 흔들리게 된다.

투명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차제에 정부의 감독방식을 크게 바꿔야 한다. 시장에 좀더 신속하게 반응하려면 이제 명실공히 자율 규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자율규제기관을 육성하고, 자율규제기관에 권한과 책임을 대폭 이양함으로써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감독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민사소송이 두려우면 제대로 된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를 활성화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시장 참여자가 현실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제도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투명해져야 한다.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코스닥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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