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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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행보가 2001년 벽두부터 예사롭지 않다.

붉은기 진군, 선군정치 등 종래의 구호가 지속되는 가운데 실사구시의 실용주의 노선이 과거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 중국방문은 다목적 카드

경제관리체제의 개선을 통해 실리와 효율을 도모하고 국가경제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신년사의 요지와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새시대의 요구에 맞게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신사고 운동에 관한 金위원장의 교시는 이러한 흐름을 잘 함축해 주고 있다.

특히 이번 金위원장의 방중은 이러한 국면 전환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명록 차수, 김용순 비서 등 20여명의 군사.외교.경제관계 간부들을 대동하고 중국을 방문 중인 金위원장은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지역을 첫째 기착지로 선택했다.

푸둥지역은 선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도해 왔던 모범 경제특구인 동시에 국제 전자.정보기술단지 밀집 지역이다.

이 지역에 대한 시찰은 金위원장이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 현장학습을 보다 공고히 하고, 전자 및 정보통신 산업 등 첨단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가시화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방중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앞당기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이번 방중 목적이 경제부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에 대비해 북.중관계의 외교적 결속을 도모하겠다는 정치.외교적 포석 또한 깔려 있다.

부시 행정부의 중국 위협론, 북한을 불량국가로 지목했던 럼즈펠드의 국방장관 임명, 그리고 동북아 전역미사일방위(TMD)체계의 추진 등은 중국과 북한간의 외교 공조를 과거 어느 때보다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개혁.개방이란 측면에서는 이번 방중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과 한반도 평화라는 측면에서 조망할 때 기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우를 상쇄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이번 방중의 여세를 몰아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조속히 실현시키는 길이다.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중.러.북과 한.미.일 두 축간의 신냉전 구도의 재현을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직 미제로 남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 문제의 해결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통해 남북한 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 실현을 위해 각별한 외교적 노력이 요청된다.

우선 대중국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이미 한.중 양국간에 교감이 형성돼 있지만 방심하지 말고 중국 지도부에 대한 설득을 통해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조만간 이뤄질 수 있도록 배전의 외교적 노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 美.中통한 여건 조성해야

그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대칭외교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월 방미 때 부시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간에 새로운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북.미정상회담을 연계시키는 방안도 고려 할 수 있다.

오는 9월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아태 경제협력회의(APEC)에 부시 대통령이 참석 예정인 바, 이를 활용해 부시-김정일간의 회동을 주선할 경우 이러한 연계전략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대북정책 역시 보다 전향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고 남북경협마저 위축된다면 과거로의 퇴행이 있을 뿐이다.

金위원장의 답방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경협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오히려 현재의 암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새로운 기재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 정 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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