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그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웬만한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500만원, 졸업까지 4년간 등록금만 해도 4000만원. 학사모를 한 번 쓰는 데 드는 비용이다. 4000만원을 모아놓고 학사모를 얹었다. [변선구 기자]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 등록금도 가격의 진실을 알기 어렵다. 복잡한 가격결정 구조 탓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대학들은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부모는 허리가 휜다고 아우성인데 대학은 싸다고 주장하는 등록금 문제를 탐사했다.

"교수 1명을 미국은 학생 1명이, 일본은 5명이, 한국은 10명이 먹여 살린다. 우리 등록금은 그만큼 싸다.”

등록금을 담당하는 전국 201개 4년제 대학 기획처장들이 늘 하는 말이다. 이기수(고려대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도 “교육의 질에 비해 우리만큼 싼 나라는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OECD 30개국 중 한국의 등록금은 국립·사립 불문하고 미국 다음으로 비쌌다. 게다가 대학 교육의 가계 부담은 우리가 1위다. 도대체 이런 ‘극과 극의 차이’가 어디서 생긴 것일까.

본지 탐사팀은 우선 사립대의 예·결산서와 국립대의 기성회비 내역을 정보공개청구로 자료를 입수하고 회계사들의 도움을 받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립대의 등록금 인상 비밀코드는 ‘부당 적립’ , 국·공립대는 ‘기성회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립대를 보자. 본지 탐사팀이 입수한 주요 10개 사립대의 예·결산 현황을 분석해 보면 예산이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립대들은 이를 근거로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 그러나 결산 때는 돈이 수백억원씩 남았다. 2008년의 경우 연세대는 680억원, 홍익대는 610억원, 고려대는 443억원, 건국대는 432억원을 남겼다. 2005, 2006, 2007년도 비슷했다. 연세대 한미경 예산팀장은 “예산안과 달리 인력 충원, 건축 추진 등이 안 돼 남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했다. 더 큰 문제는 남은 돈을 불법 적립하는 데 있다. 교육부령에 따르면 적립금은 예산에 잡힌 금액만 쌓아야 한다. 수년간 사립대 회계감사를 맡았던 A법인 회계사는 “적립금은 지출항목이다. 따라서 남은 돈을 편법으로 수입이 아닌 지출로 잡는 것은 회계규칙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사립대뿐일까. 국·공립대도 OECD 통계상 등록금 수준이 세계 2위다. 이렇게 비싸진 등록금의 비밀은 기성회비에 숨어 있었다. 국·공립대는 1992년 이후 등록금 중 기성회비만 자율화했다. 그러자 정부의 감시가 없는 기성회비를 기형적으로 많이 올렸다. 실제로 서울대의 올해 수업료는 37만원인데 기성회비는 261만1000원이다. 배(수업료)보다 배꼽(기성회비)이 더 큰 셈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기성회비를 교직원 수당은 물론 경조사비로까지 쓴 것으로 드러났다.

탐사기획팀=김시래·진세근·이승녕·김준술·고성표·권근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사진=변선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