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서프라이즈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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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런데, 왜 비밀공식이 없었겠는가? 로마군단의 기마병처럼 잘 다듬어진 외국 선수들의 당당한 위용 앞에 마치 조랑말처럼 주눅 들었던 기성세대의 짓눌린 내력을 일시에 만회한 그 쾌거에 왜 비법이 없었겠는가? 세계 언론들은 쇼트트랙의 코너워크를 접목한 기술 혁신에 주목하고 있지만, 인체 구조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세계의 벽을 뚫을 수 있었던 그 비법이 한국인의 치열한 생존방식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쇼트트랙은 부족한 양식을 두고 서로 눈치 보며 살아온 한국식 대가족의 경쟁적 삶과 상동구조이며, 작은 체구의 이점을 십분 살려 빙속 경기에 재바른 코너워크 신기술을 도입한 것은 멀리 몽골전사의 기동성을 현대화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 혁신의 뿌리는 인류학적이며 역사학적이다.

1990년대 초반, 한국의 빙상 시찰단이 쇼트트랙의 가능성을 탐색하러 캐나다와 미국을 둘러보았을 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상기되어 있었다. 뭔가 될 듯한 ‘감이 왔다’는 것이다. 동네 논을 얼려 만든 빙판에 강아지들처럼 몰려 놀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 딱 그것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작은 체구는 급회전을 요하는 코너워크에 알맞았고, 고밀도의 트랙에서 선수들의 빈틈을 파고드는 것쯤은 대가족의 밥상에서, 형제자매들과의 자원 경쟁에서, 그리고 동년배 집단과의 무한경쟁에서 이미 체질화되어 있었다. 민첩하게 코너 돌기, 빈틈 찾기, 끼어들기로 구성된 종목을 발견하자마자 한국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아예 종주국으로 군림했다. 한국인의 인류학적 생존 습성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올해도 메달을 무더기로 땄다.

작은 체구와 숏다리로 유럽의 기마군단을 제압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은 칭기즈칸의 군대였다. 몽골군이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원천기술이 놀랍게도 조랑말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덩치 큰 유럽의 군마(軍馬)가 거친 지형에 적합한 지프라면, 몽고말은 승차감과 성능이 좋은 장갑차였다. 짧은 다리에 보폭이 좁은 몽고말의 잔등은 흔들림이 작아 사수의 명중률을 높였다. 게다가, 훈족으로부터 물려받은 나무안장과 등자 덕택에 전사들은 자신의 몸을 말에 밀착시켜 마상 쇼 같은 동작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산악지대마저 바람처럼 휘달리는 몽골전사 앞에서 유럽 기병들은 뒤뚱거리며 낙마하기 일쑤였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진지는 몽골 기병의 발굽에 짓밟혔다(김종래, 『유목민이야기』).

경제적 풍요 덕에 신장과 체력의 상대적 열세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겠지만, 고밀도 경쟁에 친숙한 한국의 인류학적 습성과 몽골전사가 물려준 역사적 유전자를 스피드 스케이팅에 감각적으로 적용했다는 것, 그리고 이젠 가난의 한풀이가 아니라 자기 실현의 활주로를 자유롭게 이륙하는 젊은 세대의 당돌한 도약정신이 일궈낸 승전보라는 게 ‘서프라이즈 코리아’의 비밀공식인 셈이다.

젊은 세대의 ‘서프라이즈 코리아’가 이렇듯 경쾌하고 참신하고 혁신적이라면, 세종시 문제 하나로 한 계절을 다 보내고 다가오는 계절까지도 망칠 기세로 대치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한국’은 둔중하고 누추하고 고답적이라는 점에서 서프라이즈하다. 생선 한 마리라도 대가리, 몸통, 꼬리를 나눠 먹는 대가족 밥상의 타협정신을 망각한 탓이다. 친박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의 절충안을 ‘한마디로 가치 없는 얘기’로 일소하는 원칙론적 고집으론 조랑말 10만 군사로 백만 유럽 기병을 제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몽골전사가 휘둘렀던 반달형 칼은 융통성의 대명사다. 기성세대가 연출하는 저 충돌의 파열음을 단칼에 날려버리는 젊은 세대의 하이킥이 병존하는 한국은 서프라이즈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