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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도요타 리콜 사태와 하라키리(할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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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000만 대를 돌파한 도요타의 리콜 사태는 각자의 소임을 다해온 일본인들에겐 혼돈의 쓰나미임에 틀림없다. 세계 최고의 기업 소니가 추락할 때, 얼마 전 파산을 선언한 국민 기업 JAL이 100엔숍 같은 너절한 내면을 드러냈을 때도 이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도요타는 일본 장인정신의 승리이자, 패전의 수치를 승전의 자부심으로 환치시켰던 성장신화의 주역이었다. 그런데, 도요타 사장이 미국 상·하원 청문회에 불려가 죄목을 고하고 준엄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하지(恥)’를 당한 셈인데, 그 수모의 원인이 자신이기에 예전 같으면 하라키리(腹切り·할복)로 명예회복을 해야 할 판이었다.

마침 겨울올림픽의 참패와 더불어 일본열도는 파산론에 푹 빠져들 조짐이다. 경제대국이 하루아침에 몰락할 리는 없지만 들뜬 한국을 위해서라도 사태의 원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은 심각한 진단을 내놓는다. ‘비용 절감 전략의 실패’ ‘서비스 마인드의 결핍’ ‘관리회계에 집착한 예정된 참사’ 같은 경영학적 진단도 그렇고, ‘1등 기업의 자만심’이라는 사뭇 훈계조의 질책도 들린다. 필자는 경제 기적을 창출한 원동력, 흔히 일본혼(日本魂)으로 불리는 그 집단심리에 주목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융단 폭격으로 공장, 기계, 관공서는 무너졌지만 사람, 지식, 기술은 남았다. 재건의 머리띠를 다시 묶은 일본인들에게는 가족, 이웃에게서 은혜를 받았다는 ‘온(恩)’의식이 여전히 강했는데, 천황의 온(皇恩)은 ‘무한한 헌신’으로 표현되는 최고의 가치였다. 재건 과정에서 이 특유의 ‘온’의식은 기업에 대한 충절과 헌신으로 표출되었다.

일본인들은 충성과 헌신이 사람의 도리, 즉 ‘기리(義理)’를 지키는 행위 양식이라 믿는다. 여기서 세계 최고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갖춘 경제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이면엔 어둠이 짙었다는 게 문제였다. 최근 출간된 도요타 관찰기는 충격적인 보고를 내놓았다. 직공은 조립기계, 작업장은 감옥, 공장은 ‘작은 북한’ 같다는 것이다. 출고된 모든 차를 리콜해야 하는 ‘불량률 100%’의 상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저자의 분노는 폭발한다. 언론과 정부를 입막음해 사실을 감춘 것이다. (마이뉴스재팬, 『토요타의 어둠』)

직원들이 ‘기리(義理)’를 다했는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은혜를 갚는 일에 집착했을 뿐, 주군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혁을 요구할 도덕적 임무, 즉 ‘기무(義務)’를 팽개쳐 버렸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베네딕트는 일본 입문서인 『국화와 칼』에서 기리는 ‘본의 아닌’ 운명에 대한 봉사, 기무는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한다. 때로는 지도자와 CEO의 과오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리와 의무는 종종 충돌한다. 바쿠후 시절, 쇼군(將軍)에 반기를 든 어떤 영주가 자신의 무사에게 쇼군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쇼군이 번(藩)을 방문하자 그 사무라이는 쇼군을 호위해 탈출시키고는 자신의 영주에게 돌아왔다. 영주는 하라키리를 명했다. 그 사무라이는 할복함으로써 ‘영주에 대한 의리’와 ‘쇼군에 대한 의무’를 일치시켰다.

그런데, 누가 일본의 첨단공장에서 하라키리를 감행할 수 있을까? ‘의리’로 쌓아 올린 20세기의 경제신화는 이단, 저항, 혁신 같은 ‘의무’ 실행이 더 중요해진 21세기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교토 대학의 그 젊은 교수가 촛불시위에 대한 냉소를 이젠 거뒀는지는 모를 일인데, 의리보다 의무를 ‘오히려’ 중시해온 한국적 기질과 풍토도 결코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아무튼, 도요타 리콜 사태를 보면서 지도자와 CEO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겼다. 하라키리를 감수하고라도, ‘아니요!’라고 과감하게 말하는 부하가 한 명이라도 눈에 띄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없다면, 자신이 곧 리콜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