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클린턴 대통령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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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주 미 뉴욕타임스(1월 10일자) 오피니언 면에 눈길을 끄는 기고문이 하나 실렸다.

한 프랑스인이 퇴임을 앞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선임연구원인 파트릭 베이가 쓴 편지의 서두는 이렇다.

"친애하는 클린턴 대통령께, 백악관을 떠날 준비를 하시면서 분명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고 계시겠지요. 대통령으로서의 시간은 끝나고 이제는 덜 매력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께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으로 일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

기고자는 개정된 프랑스 민법에 따라 과거 프랑스가 주권을 행사했던 아칸소 출신인 클린턴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요건을 갖추지 않고도 바로 귀화절차를 밟을 수 있다면서 2002년 5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고 권한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나 리오넬 조스팽 총리 외에 제3의 참신한 인물을 기다리는 여론이 높은 만큼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열거된다.

여당이 다수당이면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큰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소수당으로 몰리면 의회를 해산할 수 있으며 중임제한도 없다는 것이다.

파리 물가가 뉴욕의 차파카보다 싸고, 정치인들이 쓰는 어휘래야 '선거' '세계화' '경기침체' 등 몇개 단어에 불과하므로 말도 문제될 게 없다고 부추긴다.

결국 프랑스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야유인 셈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와 익살.야유가 대수롭지 않게 통용되는 풍토에서 가능한 얘기다.

이 편지를 우리 현실에 맞춰 패러디 해보면 어떨까.

"한국의 다음 대선은 2002년 12월로 예정돼 있습니다.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와 이인제(李仁濟)민주당 최고위원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보다 참신하고 유능한 '제3의 인물' 을 기다리는 여론이 높습니다. 당신이 당선된다면 한국의 대통령은 많은 이점을 가진 자리임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여권공조를 위해 국회의원을 남의 당에 빌려줄 수도 있고 구차하게 모금행사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예산을 선거자금으로 돌려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욱 좋은 점은 현직 대통령으로 있는 한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한 대배심 증언 같은 수모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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