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뇌관 선거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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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 경영의 ‘기획집단’인 정치권은 정치지도자의 돈 문제가 터지기만 하면 쑥대밭이 되곤

했다.고려대 함성득 교수는 “정치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암적 존재가 정치자금을 둘러싼 정쟁”이라고 했다.정치 자체가 일시적으로 사라질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는 것이다.

1998년 가을,옛 여권(한나라당)의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 사건,이른바 세풍(稅風

)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이회창 총재측은 곧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 시절 비자금을 수사하라며 맞불을 놓았다.

여야간의 극한대치는 서상목(徐相穆·한나라당)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이듬해 봄까지 8개월간 이어졌다.

그 사이에 있었던 경제 청문회(99년 1월)에선 “내가 김영삼(YS)전 대통령에게 92년 대선 때 최소한 1백50억원을 줬다”는 취지의 한보 정태수씨의 증언이 나왔다.

이를 여권의 보복으로 인식한 YS는 그 후 “김대중씨의 임기는 올해가 끝”“정치보복의 화신”이라는 등의 막말로 정치 행보 재개를 본격화했다.

임기 마지막 해인 97년 YS는 아들 현철(賢哲)씨가 정치자금을 주물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덕적 권위가 실추됐다.

그는 ‘식물 권력’상태에서 그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신탁통치’상황을 맞았다.YS는 “97년 대선 때 한나라당측의 요구대로 DJ비자금 수사를 검찰에 지시했다면 전국에서 폭동이 일어나 선거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고 정치자금 수사의 폭발성을 강조했었다.

95년 가을,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수사는 ‘통치자금’의 규모와 조성방법을 처음으로 실감나게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헌정사상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사건은 정치보복이라는 시비를 낳았다.

현직 대통령이 퇴임 후 신변 안전을 위해 무리수를 써서라도 정권 재창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때 굳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대 박찬욱 교수는 “안기부 예산이 정당의 선거비용으로 전용됐다는 의혹은 정치발전과 재발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정치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관련자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여권의 정치적 관용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朴교수는 이와 함께 “3金씨와 이회창 총재가 과거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다수 국민의 정서를 인정하고,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정치 회복에 전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 전영기,최상연,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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