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요술공주' 세리, 시즌 첫대회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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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박세리(24.아스트라)는 요술공주다.

2년 전 하얀 발목을 드러내며 US여자오픈 우승으로 국민들에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고달픔을 잊게 해줬다. 그가 전국이 얼어붙은 날 다시 돌아왔다. 암울한 경제와 지겹기만 한 정치상황 속에 몰아친 15년 만의 혹한을 뚫고 날아온 훈풍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그랜드 사이프러스 리조트(파 72.5천5백98m)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의 개막전인 유어 라이프 비타민스 클래식 대회(총상금 1백만달러)에서 3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백3타로 우승컵을 안았다.

대회 직전 "올해 8승을 하겠다" 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장담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15일(한국시간) 바다 속에 도사린 해룡이 몸을 솟구치듯 특유의 몰아치기로 전날 공동 3위에서 선두권을 제치고 역전했다.

그가 마지막날 친 64타는 1999년 켈리 로빈스가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핼사우스 이너규럴 대회 때 작성한 코스 레코드와 동일한 기록이다.

3라운드 1, 2번홀을 파로 지킨 그는 3번홀(파4.3백23m)에서 잘 맞은 티샷에 이어 세컨드샷을 핀에서 약 1.2m 지점에 붙여 가볍게 버디를 낚았다.

아쉽게도 4번홀(파3.1백55m)에서는 6번 아이언 티샷이 짧아 온그린에 실패하며 2온 2퍼팅으로 보기를 기록했다. 5번홀(파5.4백73m)도 그를 시험했다. 평소 같으면 드라이버를 잡고 투온을 노릴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골프의 신' 이 놓은 덫을 보았던 것일까. 침착하게 3번 우드를 꺼내들었다. 신중한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티샷이 러프에 떨어졌지만 그는 안전하게 페어웨이로 공을 꺼내 3온에 성공, 기적처럼 8m 버디퍼팅을 홀에 떨구었다.

다음부터는 만사가 신바람 골프였다. 8번홀(파3.1백26m)에서부터 11번홀(파5.4백55m)까지 4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 그는 페니 해멀(미국)과 공동 선두를 이뤘다.

이어 맞바람이 몰아친 14번홀(파4.2백90m)에서 3번 아이언과 피칭웨지로 깃대 전방 8m에 붙인 다음 피칭웨지로 그대로 칩인, 득의의 버디를 낚으며 경기를 뒤집었다. 해멀에 1타 앞선 단독 선두.

기세가 오른 그는 15번홀(파5.4백58m)과 16번홀(파4.3백36m)에서 줄 버디로 잡아 해멀의 추격을 단호히 거부했다. 해멀은 16번홀 보기를 범하며 제풀에 무너졌다.

박세리는 99년 11월 페이지넷 투어 챔피언십 우승 이후 14개월 만에 정상에 올라 상금 15만달러(약 1억8천만원)를 받았다. 98년 미국 진출 이후 LPGA 투어 9승째다.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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